[시론/김영봉]개헌 말고는 할 일이 없나

  • 입력 2007년 1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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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순(旬),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연임제 개헌 제안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야 4당은 대통령의 초청 오찬 설명회도 일절 거부할 만큼 불신하고, 대통령은 “개헌은 대통령의 역사적 책무”라며 끝까지 돌파할 투지를 보인다.

‘경제 회복’ 국민의 소망엔 눈감고

개헌은 가장 중요한 국가 현안인가. 지금 한국이 당면한 문제는 북한 핵 위기, 경기침체, 부동산 버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가안보와 민생확보에 직결된 과제이다. 개헌안은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뒷날의 정치구조를 바꿔 주겠다는 것이다. 장자(莊子)의 철부지급(轍부之急)이 연상되는 제안이다. 장자는 끼니를 이을 좁쌀을 꾸러 갔다가 ‘백성에게 세금을 받아서 300금을 꾸어주겠다’는 고을 수령에게 말한다.

“내가 여기 오는데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서 붕어 한 마리(轍부)가 한 되의 물로 목숨을 구해 달라더라. 그래서 남쪽 오나라 월나라 임금을 보러 가는 길인데 오는 길에 서강의 물을 가져다 구해 주겠다고 했더니 붕어가 말하더라.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물 한 되일 뿐인데 무슨 그런 거창한 약속이냐. 차라리 뒷날 건어물점에서 내 시체나 찾아 보거라.”

금년에 개헌이 꼭 필요하다 해도 개헌 정국의 앞길은 난망하다. 아무리 좋은 제안도 인심을 잃고 성사한 예가 있는가. 노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자 여론은 즉각 “그는 무엇을 노리는가”라며 저의(底意)부터 따지려 한다. 10% 내외 지지율의 정치 9단 대통령이 야당과 노골적으로 적대하며 돌연히 내놓는 제안이니 당연한 의심이다. 개헌도 안 되고 국론분열만 확대되리라는 점은 대통령도 알 것이다.

올해 국민은 새 대통령을 뽑는다. 새 정부를 뽑아서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건설하는 때다. 이런 희망의 새해를 맞아 국민이 절실히 바라는 바는 활력 있는 경제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7%는 대통령이 가장 노력할 일로 경제회복을 꼽았고(동아일보 조사), 66%는 내년 대통령으로 경제회생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KBS 조사). 국민의 이런 소망이 개헌 정국 속에서 길을 잃게 하는 것은 민주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경제 활력의 회복은 현 정권이 결자해지할 과제다. 21세기 들어 지구촌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루고 있다. 이 기간을 노 정권은 기득권 타파, 균형발전, 동반성장 같은 분배적 과제에 몰두했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침체된 기업 의욕 속에 저성장, 저고용과 잠재성장률 침하의 고리에 깊숙이 빠지는 중이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한국 경제에 이 추세가 고착된다면 외국의 관찰자가 경고하듯 ‘중국의 일개 변방이 되거나 필리핀처럼 빈국으로 추락’하고 말지 모른다. 참여정부에는 그나마 새 성장원동력 제공을 기대하게 하는 한미 FTA를 성사시킬 마지막 과업이 남아 있다. 남은 임기에 이에 진력해 봉사할 일이다.

국론 분열로 통합만 해치는 꼴

작년 이래 우리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핵을 이고 살 운명의 국민이 됐다. 부동산 값이 기록적으로 올라서 국민의 주거 안정이 근본부터 위협받게 됐다. 교육 문제, 일터 문제 등도 해가 갈수록 악화된다. 여기에다 금년에는 세계 경제 침체, 저환율 등 외부 여건이 악화되고 부동산 버블 붕괴, 가계부채발 금융위기 등 메가톤급의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아 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경제적 희생도 마다할 정치적 행태와 사회적 무질서도 예상된다.

이런 여건 속에서 국민은 지난 20년간의 이념의 미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을 세우려 한다. 정치권이 만드는 혼돈의 함정을 국민이 어떻게 헤치고 소망하는 바를 이룰지 정말로 슬기를 발휘할 때다.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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