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식에서 서명하기 위해서는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대화의 상대로 공식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그러나 그 전제가 될 핵 폐기를 이끌어낼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북한과 미국의 샅바싸움은 당초 예상대로 길어질 전망이다. 양측은 6자회담 중재국인 중국의 주선으로 베이징(北京)에서 28, 29일 양일간 15시간 가까이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잠정평화협정?=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북한 ‘정권교체(regime change)’ 의사가 없다는 것도 재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남북한 지도자와 함께 공동 서명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통일연구원 박종철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측이 최근 들어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나라들이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데 대해 미국이 화답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정전협정의 서명자인 중국을 현실적으로 배제할 수 있겠느냐”며 남-북-미 3자에 의한 종전 조인식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미국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북핵 폐기 이후 맨 마지막 단계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가 돼야 핵을 폐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어서 서로 간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양측 ‘줄다리기’ 팽팽=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양측의 베이징 협상이 결렬된 것은 아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곧바로 거절하지 않고 검토해 회답을 주겠다고 말한 점으로 볼 때 이번 회동을 실패로 단정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이번 접촉에서 양측이 가장 크게 의견 대립을 보인 부분은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 문제와 핵 폐기 조치의 사전 이행 여부.
북한 측은 이날 “6자회담이 재개되면 계좌 동결 해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6자회담 재개와 동시에 만들어질 워킹그룹에서 논의하겠다”는 기존 태도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북한 역시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재입국 허용 등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하라는 미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먼저 BDA은행 계좌의 동결을 해제하고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해야 핵 폐기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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