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민족 대명절 앞에 두고 또 ‘폭탄 발언’

  • 입력 200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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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발표 아는지…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한 3일 평양의 거리 표정. ‘전투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선전구호가 붙여진 육교 아래서 시민들이 궤도 전차를 기다리느라 줄을 길게 서 있다. 연합뉴스
핵실험 발표 아는지…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한 3일 평양의 거리 표정. ‘전투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선전구호가 붙여진 육교 아래서 시민들이 궤도 전차를 기다리느라 줄을 길게 서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3일 전격적으로 핵실험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마지막 승부수’를 꺼내들었다는 뜻이다.

영변원자로 가동 중단→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핵 보유 선언→핵무기 발사체인 미사일 발사 등 일련의 위기 고조 과정을 거쳐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벌여 온 북한의 핵 게임이 종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핵실험 선언 왜 지금?=7월 5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미사일 7발 발사 이후 북한은 “더욱 강력한 힘과 기술이 공개될 것”이라며 핵실험 가능성을 공공연히 시사해 왔다. 북한은 함북 길주군 풍계리와 자강도 등에서 핵실험 움직임을 노출하며 위기를 고조시켜 왔다.

북한의 핵실험 선언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점에서 결국 관심은 왜 북한이 이 시점에서 핵실험 실시를 선언했는지에 쏠린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뒤 ‘마지막 외교적 노력’에 나서고 있는 시점이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 대한 당근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북한 당국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서 기대할 바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핵실험 선언이라는 극단적인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미국을 양자대화에 응하게 하는 것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통한 금융제재 철회 및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8, 9일로 예상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일본 총리의 한중 양국 정상과의 연쇄회담이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사전 차단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측은 이날 성명에서 핵실험의 시기를 밝히지 않았다. 당장 핵실험을 하기보다는 국제정세와 미국의 정책 변화 등을 보면서 마지막까지 핵실험이라는 카드를 아껴 두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셈. 북한의 이날 선언이 협상용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에도 발사 위협이 ‘협상용’이라는 분석이 우세했으나 북한이 발사를 강행했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속단은 위험하다.

▽6자회담은?=핵실험은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는 것이기 때문에 핵실험 발표가 6자회담 재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마련도 동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북한의 이날 행동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까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미국 내 협상파의 입지를 급격히 약화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북한 내부의 정상적인 국가위기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행위”라며 “일부에서는 북측의 상황을 남측의 유신말기 상황과 비교하며 급변사태를 점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전성이 보장된 핵실험?’=북한이 3일 발표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실험’이란 지하 핵실험을 의미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핵실험은 지하와 수중, 대기권 등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핵무기의 은밀성과 실험 안전성을 위해서 지하에서 가장 많이 실시되기 때문. 지하 핵실험은 지진파와 함께 소량의 방사성 가스만 발생할 뿐 방사성 물질과 공중음파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가장 안전한 데다 확실한 증거가 남지 않는다.

지하 핵실험은 지하 수백 m∼1km에 수직으로 공동(空洞)을 뚫어 그 안에 핵폭발 장치를 설치한 후 폭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낙진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와 흙으로 갱도를 메운 뒤 실시한다.

갱도에서 수십 km 떨어진 곳에 관측탑과 실험 과정을 촬영하는 X선 장치, 핵폭발 때 나오는 방사능 물질과 지진파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 실험의 성공 여부를 관측하게 된다. 북한은 이미 지하 80∼100m에 각종 군사기지를 구축한 만큼 소규모 지하 핵실험을 위한 굴착은 문제가 없다는 게 한미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 北의 핵능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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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은 8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이전에 확보한 플루토늄과 2003년 2월 영변의 5MW급 원자로를 재가동해 인출한 폐연료봉을 전량 재처리했을 경우 얻은 플루토늄을 합치면 총 40∼50kg의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북한이 플루토늄을 이용해 한두 개의 핵무기를 제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플루토늄 5, 6kg이면 핵폭탄 1개를 제조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은 7∼10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앞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짐 리치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도 6월 “북한은 핵무기 4∼13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으며 이는 2003년 이전에 북한이 가진 것으로 예상됐던 플루토늄 양보다 50%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미국 워싱턴의 핵 감시기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2004년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2∼9개의 핵무기를 보유 중이며 북한이 확보한 무기급 플루토늄은 15∼38kg 수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이 1983년부터 핵무기 기폭장치의 점검을 위해 70여 차례에 걸쳐 고성능 폭발실험을 했지만 대포동 같은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핵탄두를 작게 만드는 기술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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