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2030’ 현실성 있나…‘어떻게’ 빠진 추상적 미래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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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앞으로의 국가 경영 청사진을 담았다며 30일 내놓은 ‘비전 2030’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비전 2030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 후 줄기차게 추진해 온 성장과 분배의 ‘동반성장’ 구상을 집대성한 것. 제대로 추진하면 2030년에는 국내총생산(GDP) 2조406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 삶의 질 10위 등 세계 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고 복지 수준도 크게 높아진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정부가 앞으로의 국가비전을 내놓은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 1100조 원으로 추산되는 재원 조달계획이 명확하지 않고, 추진 과제는 추상적인데 결과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이번 발표 배경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이창호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은 “비전 2030은 확정된 방안은 아니다”며 “미래 청사진을 공론의 장(場)에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비전의 법적 행정적 구속력이 약해 다음 정부 이후에 대폭 수정되거나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 현실성 떨어지는 과제

정부는 비전 2030을 실현하기 위해 △성장 동력 확충 △인적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사회적 자본 확충 △능동적 세계화라는 5개의 전략 아래 26개의 제도혁신 과제와 24개의 ‘선제적 투자과제’를 정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등의 조치는 거의 없다. 대신 최근 수년간 사회적 진통을 겪고도 해결하지 못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과제가 많이 눈에 띈다.

정부는 보고서에서 사회복지 선진화를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국민연금 개혁을 올해 하반기까지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또 아동 및 청소년에게 ‘방과 후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면 향후 5년 내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 근거 약한 장밋빛 미래

보고서에는 또 2030년까지 △청년 고용을 위해 취학 및 군 입대 연령의 하향 조정 △노인수발보험을 노인 인구의 12.1%까지 확대 적용 △통일 인프라 재정을 지난해 GDP의 0.1%에서 1.0%로 확대 등 국민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정부가 미래 예측의 기초인 경제지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고서는 재원조달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을 2006∼2010년 4.9%, 2011∼2020년 4.3%, 2021∼2030년 2.8%로 잡았다.

하지만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올해 한국경제는 ‘불황’에 가까우며 내년 경제성장률은 4%대 중반에 머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실제 경제성장률은 계속 잠재성장률을 밑돌았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전 2030은 낙관적 예측을 바탕으로 한 데다 정부의 역할에 중심을 둔 ‘큰 정부’를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도 미래전략 보고서를 내놓지만 성장 동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영국은 규제개혁 및 경쟁 촉진과 정보기술(IT) 인력 양성, 싱가포르는 경쟁력 유연성 확보 및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균형 발전 등을 핵심 과제로 담고 있다.

○ 재원 마련 방법이 안 보인다

정부는 비전 달성을 위한 재원(매년 1인당 최소 33만 원)마련과 관련해 2010년까지는 별도의 증세(增稅) 대신 비과세 감면 및 축소와 과세 투명성 제고 등을 통해 4조 원을 마련할 수 있고 나머지 1096조 원은 △증세 △국채 발행 △증세+국채 발행 등의 방법을 놓고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떤 방법이든 현실성이 희박해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세는 추상적인 비전 달성을 위해 돈을 내야 하는 납세자들의 강한 저항이 예상된다. 수년 동안 정부의 빚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국채 발행도 위험하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248조 원에 이어 올해 말에는 280조 원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 데다 국채 발행에 따른 이자도 올해 11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예산처 이 실장은 “비전 2030은 단순히 정책 과제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수단까지 제시한 것으로 ‘장밋빛 청사진’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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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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