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권’ 환수 왜 지금]<4·끝>‘국방개혁 2020’ 허실

  • 입력 2006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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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말 서울 용산구 국방부.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일간지와의 합동회견에서 “내년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까지 올리려 했지만 방법이 없다”고 밝히자 많은 군 당국자가 실망감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10년 이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지 불과 열흘 만의 일이다.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에 고무돼 2004년 국방예산을 GDP 대비 3.2%(전년 대비 28.3%)까지 늘려 제출한 국방부 내부에선 “자주국방이 말로만 되느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한 관계자는 “예산 계획도 없이 자주국방 명분에 집착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까지 거론한 것은 군과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결국 2004년 국방예산은 전년보다 8.1%(1조400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방개혁 예산 확보 경제 여건 도외시=국방부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62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국방개혁을 추진 중이다. 2011년까지 150조7000억 원이 들어가는 국방중기계획이 끝나면 전시작전권 환수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방개혁은 예산 확보와 실효성 측면에서 적지 않은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국방개혁의 예산 확보 계획이 경제 여건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개혁 1단계인 올해부터 2010년까지 국방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9.9%에 이른다. 전시작전권 환수 준비와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해 각종 첨단 전력이 집중 도입돼 ‘초기 투자’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국방부의 주장.

하지만 최근 10년간 국방예산이 9.9% 이상 오른 것은 지난해를 비롯해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표 참조).

국방부는 2020년까지 우리나라의 연평균 GDP 성장률을 7.1%로 추정했지만 지난해 한국은행은 2014년까지 GDP 성장률이 4.6%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유가와 재정 적자의 증가로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 국방예산 확보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국방부는 지난해 9월 국방개혁 발표 때 2020년까지 필요한 예산이 683조 원이라고 했다가 불과 한 달 만에 621조 원으로 고쳐 국방개혁이 급조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첨단 무기의 도입 비용은 예상을 크게 초과하기 일쑤고, 운영유지비까지 고려하면 국방개혁의 소요 예산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년 전 국방부는 노후된 나이키 지대공 미사일을 대체할 차기유도무기(SAM-X)로 신형 패트리엇(PAC-3) 미사일의 도입을 추진하다 도입 장비의 가격이 배 이상 초과해 결국 독일이 쓰던 중고 패트리엇 미사일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첨단 장비 도입 시기에 맞춰 전시작전권 환수는 무책임”=국방개혁으로 전시작전권을 환수할 만큼의 안보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전시작전권 환수에 필요한) 모든 국방요소는 국방중기계획에 다 포함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2011년까지 도입될 전력만으론 전시작전권을 환수할 만한 능력을 갖추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국방부는 2012년경이면 몇 기의 다목적 실용위성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정밀타격무기 등을 갖춰 독자적인 대북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도입이 지연될 수 있고 또 도입 장비를 완벽히 운용하려면 오랜 시간의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차기전투기(FX) 사업과 노후한 나이키 지대공 미사일을 대체하는 SAM-X 사업 등 많은 무기도입 사업이 당초의 절반 이하로 규모가 줄거나 도입이 연기된 전례가 있다.

김동신 전 국방부 장관은 “위성, 조기경보기와 같은 첨단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의 운용 기간이 필요한데, 도입 시기에 맞춰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 항공우주 전문가는 “몇 기의 위성에 대북 감시 능력을 크게 의존하는 형태로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국이 100여 기의 민·군 위성 이외에도 RC-135S 정찰기, U-2 고공정찰기와 같은 많은 정보수집 자산을 운용하는 이유도 그만큼 독자적인 감시 능력 확보가 힘들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도 지난해 말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이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방개혁에 따른 육군병력의 감축이 북한군 특수부대와 같은 ‘은폐된 위협’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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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동아시아 군비경쟁 가속▼

중국의 부상, 미국과 미사일방어(MD)체제 조기 구축에 들어간 일본,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최근 동아시아 지역의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펴낸 ‘2006 군사균형’에 따르면 2005년 동아시아 지역의 군비지출은 2001년 1375억 달러에서 2005년에는 1927억 달러로 2001년에 비해 40.1%(552억 달러)나 늘었다.

이는 중국과 한국의 군비 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 2001년에서 2005년까지 중국은 364억 달러, 한국은 85억 달러가 늘어나 두 나라의 증가액이 동아시아 전체 군비 증가액의 81.3%를 차지할 정도다.

북한 역시 같은 기간 21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3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본은 403억 달러에서 447억 달러로 증가폭은 작으나 전체 규모면에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의 군비경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군 현대화를 선언하며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이 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리고 있기 때문.

2004년 말에 발표된 중국의 국방백서에 따르면 중국은 병력을 감축하는 대신 해·공군과 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 전력을 증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첨단 전투기를 매년 수십 대씩 구매하는 한편 대만을 겨냥한 단거리 미사일의 수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또 항공모함, 공격용 구축함,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신형 잠수함 같은 전략무기를 확보해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군사비 지출은 2001년에서 2005년까지 43억 달러 증가에 그쳤으나 미군의 역할 증대로 일본의 군사적 위상은 날로 높아 가고 있다. 일본은 최신형 조기경보기와 정찰위성을 도입하고 내년 초까지 고해상도 정찰위성 2기를 더 쏘아 올리는 등 미사일 대응능력 강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주요국 군비 지출액 추이 (단위: 억 달러)
연도미국유럽(구소련
국가 제외)
중국일본한국북한
200035582330420453.16127.4920.91
200134762207435.51404.96119.1945
200239052511511.59392132.3750
200344312752559.48428.35146.2355
20044971275662545116355
20055346227780044720760
자료: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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