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납북자 8만2959명 아직 생사조차 모른다니”

  • 입력 2006년 6월 2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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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56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21일.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이미일(57·여·사진) 이사장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얼굴 없는 아버지’는 오늘도 가슴 속에 차돌만 한 응어리로 남아 있다. 아버지는 1950년 9월 북한 정치보위부 요원들에게 끌려간 이후 소식이 끊겼다. 반공 단체인 서북청년단에 돈을 기부했다는 것이 끌려간 이유였다.》

정부는 단 한 번도 이 이사장 아버지의 생사 확인에 나선 적이 없다. 전쟁 후의 납북자 수가 공식적으로 485명이라고 밝힌 적이 있을 뿐 전쟁 중 납북자 수에 대해서는 정확한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말이다.

“아버지가 잊혀진 존재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1978년 고교생 때 납북된 김영남(45) 씨는 이달 말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를 만난다죠?” 두 모자의 상봉 얘기를 접할 때마다 이 이사장은 부러움과 씁쓸함이 교차할 뿐이다.

“여러 번 전쟁 중 납북자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통일부는 ‘모른다’는 말밖에 안하더군요. 국가기록원과 경찰청, 국가정보원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일에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참다못해 2000년 납북자 가족들과 함께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도저히 이 나라 사람을 위한 정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말이다.

머리가 희끗한 딸은 아버지와 같은 전쟁 중 납북자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이사장과 회원들은 국회도서관을 매일같이 찾다시피 했고 국가기록원을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

이들은 2002년 마침내 1952년 정부가 발간한 ‘6·25사변 피납치자 명부’ 5권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전쟁 중 납북자 수는 8만2959명에 이른다. 이 이사장과 회원들은 이어 전쟁 납북자 수를 1만7000여 명으로 집계한 1954년 내무부 자료 등 관련 자료를 계속해서 찾아냈다.

가족협의회는 그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6·25전쟁 납북자 사료집’을 만들고 있다. 올해 9월 발간이 목표.

이 사료집은 전쟁 납북자 가족이 방방곡곡을 뒤져 모은 납북자 명부와 정부의 공식문서를 900여 쪽 분량에 담게 된다.

이 이사장은 올해 4월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485명의 전쟁 후 납북자가 전체 납북자인 것처럼 발언한 이유를 따지기도 했다.

이 장관은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전쟁 납북자 실태조사를 약속했고 사료집 발간 비용으로 10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통일부가 여전히 실태조사에 소극적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통일부 관계자는 “전쟁 납북자 실태조사의 범위와 시기, 방법을 관련 단체와 협의 중”이라며 “국회에 제출한 자료 등에서 전쟁 중 납북자의 존재를 이미 인정해 왔다”고만 밝힐 뿐이다.

오늘 송환촉구대회

가족협의회는 22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6·25전쟁 납북피해 56년 납북자 송환촉구대회’를 열고 “10만여 명으로 예상되는 전쟁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줄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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