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기 다짐’ 돼야 할 盧대통령 추념사

  • 입력 2006년 6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현충일 추념사에서 “독선과 아집, 그리고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시장에서 상품의 질과 서비스로 경쟁하듯 정책과 서비스로 경쟁하는 시대로 가자”고 말했다. 민주주의론(論) 강연을 듣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날 노 대통령의 말은 우리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자기 다짐’이 돼야 할 내용인데도 ‘남을 가르치듯’ 주어(主語)가 뒤바뀐 형식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추념사에서도 ‘공동체적 통합’을 강조했고, 공사석에서 ‘사회 속의 증오와 분노 해소’를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자신은 지난 1년간 양극화(兩極化) 논란과 ‘80%의 환심을 사기 위한 20% 때리기’ 식 부동산정책을 통해 사회를 거듭 편 가르고 증오와 분노를 증폭시켰다. 결과는 빈곤층의 확산이었다. 과거사 파헤치기와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 친북 발언을 한 동국대 강정구 교수 구하기 등을 통해서는 끝없이 좌우 이념 대립을 부추겨 왔다. 균형과 평등을 명분으로 시장원리와 거꾸로 가는 규제도 늘렸다.

노 대통령이 강조한 ‘정치시장(市場)’의 최고 잣대는 바로 유권자들의 표(票)다.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이 여당에 사상 최악의 참패를 안긴 것은 여권이 그동안 제공한 정책과 서비스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이자 퇴출 요구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정치의 시장경쟁원리와 ‘다름을 용납하는 관용’을 강조하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돌려줄 말은 “그쪽이나 잘하세요”밖에 없지 않을까.

노 대통령은 2100여 자 분량의 추념사 가운데 7분의 1 정도만 순국선열 추도에 의례적으로 할애했을 뿐 대부분을 ‘정치 강연’으로 시종했다. ‘살아 있는 과거’인 2002년 6월 29일의 서해교전 희생 장병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부터 이러니 유가족들이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희생을 외면 말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게 아닌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을 잊지 않고 엄숙히 기리는 것은 정부와 대통령의 의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