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大選까진 1년 반이나 남았다

  • 입력 2006년 6월 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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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권력누수)도 아닌 ‘죽은 덕(dead duck)’ 대통령이 될 거라고 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터졌을 때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얘기다. 그런데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고 정권을 재창출한 뒤 68%의 박수를 받으며 퇴임했다. 비결은 대(對)국민 사과와 물갈이 인사, 국정 운영 방식 쇄신이었다. 1987년 6월 12일 베를린 장벽 앞에서 그는 “고르바초프 씨, 이 벽을 허무시오!” 하고 외쳐 이념전쟁까지 종식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선거 참패 뒤 “추진해 온 정책 과제들을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레이건이 끝장낸 좌파 이념을 되살린 대통령답게 레이건의 위기 극복법과 반대로 간다고 밝힌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첫째는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이고, 둘째는 회군(回軍)하다 남은 지지층마저 놓칠까 싶어서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건 신경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됐다. 노 대통령은 사회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정치를 시작해 자칭 민주화세력과 운동권 386으로부터 좌파 논리를 편식했다. 2000년 전후 몰아닥친 세상의 변동이 보일 리 없다.

세계는 지금 세계화 적자(適者)와 이에 거스르는 좌파 포퓰리즘 국가주의자들이 맹렬히 패권 다툼 중이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앵글로스피어(영어권 국가)가 세계화 그룹에 속한다. ‘21세기 사회주의’와 내셔널리즘을 내건 남미 국가와 과도한 복지제도를 고집하는 ‘늙은 유럽’은 반(反)세계화 세력이다.

세계의 주류 경제학자와 잘사는 나라들이 세계화 쪽에 선 이유는 지금 상황에선 이쪽이 맞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가 잘나가는 듯한 건 유가 폭등 덕이고, 프랑스가 안 무너지는 건 프랑스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돈을 잘 벌기 때문임을 우리의 좌파 집권 세력은 모르는 모양이다. 부자에게 세금 뜯어 나눠 주는 정책을 가열차게 수행하겠다는 발언이 그 증거다. 암만 노 정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대도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적 책임을, 시장경제보다 정부 주도 경제를, 한미 동맹보다 민족 공조를 중시하는 한 세계화 역행 정권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진작 좌파 정체성을 고백한 노 정권은 민주나 개혁의 간판으론 ‘선수끼리 국민 속이는 선거’를 더는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이젠 민족과 통일을 내걸고 창당 초심으로 헤쳐모일 가능성이 크다. 남북 정상회담과 반(反)FTA 바람을 타면 지지층 재결집과 재집권도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다. 노 대통령도 열린우리당에 “멀리 보고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문제는 앞으로 대통령선거까지 남은 1년 반이다. 그 기간이면 모르던 남녀가 만나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을 수 있다. 노 정권이 겉으론 무심한 척 정책 과제만 수행한대도 그 좌파적 정책들이 헌법처럼 자리 잡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 같은 코드 브레인이 교육부총리가 된다면 볼리비아의 가스 국유화 뺨치는 ‘교육 국유화’, 즉 대학평준화도 가능하다. 과거사 청산을 통해 친북행위가 민주화로 둔갑할 수도 있다. 교육계와 방송계에 이어 사법 국방 분야의 코드 통일도 강 건너 불이 아닐지 모른다. 그 사이 가렴주구(苛斂誅求) 조세 개혁과 반(反)기업 반외자 정책으로 국내외 기업과 중산층까지 이 나라를 탈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공공의 도덕은 ‘착하게 살자’는 개인의 도덕과 달라야 한다. 중국을 포함해 잘나가는 나라의 리더는 모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실용주의를 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유토피아적 이상과 좌파 이념은 실용주의와 상극이다. ‘착하게 살라’는 정부는 사이비 종교집단과 다름없다.

그래도 노 정권이 반세계화의 길로 달린다면 개인이라도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아들도 미국으로 경영학석사(MBA) 따러 간다 하지 않는가. 남은 1년 반, 우리끼리라도 실용적 세계화로 살아남아야 한다. 일제 36년도 견딘 우리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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