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鄭의장 공격… 선거이후 與 노선갈등 예고편

  • 입력 2006년 5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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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5·31지방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자중지란에 빠졌다. 28일 친노(親盧·친노무현 대통령) 직계인 김두관 최고위원이 정동영 의장의 ‘정계 개편 추진’ 발언을 비난하면서 “선거 전에 사퇴하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노 대통령 및 직계그룹의 행보와 무관치 않은 발언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친노 직계의 여권 내 차기 대권 구도 흔들기?=김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와의 교감은 없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도 “정치인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의 발언에는 친노 진영의 내부 정서와 이후 정국 운용 구상을 보여 주는 단서들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일회성으로 보아 넘기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과 직계그룹은 2월 18일 전당대회 이후 정 의장에게 당권을 맡기고 힘을 실어 주는 모양새를 취해 왔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이 당의 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정 의장의 사퇴를 공개 거론함으로써 친노 진영이 정 의장에게 계속 힘을 실어줄지 의문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정 의장은 여권의 대권 후보군 중 여론 조사 지지율이 가장 높지만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번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여권 전체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서 이렇다 할 정치적 역량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당내 비판에 직면해 있다.

김 최고위원의 ‘정동영 사퇴’ 발언도 그런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그 파장과 의도가 더욱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사실 ‘정동영으로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은 여권 전반에 상당히 퍼져 있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김 최고위원뿐 아니다. 친노 직계인 열린우리당의 모 인사는 1개월여 전 사석에서 “강금실, 진대제를 눈여겨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나 진대제 경기도지사 후보의 정치권 진입이 단순히 지방선거용만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바꿔 말해 정 의장을 비롯한 기존의 대권 주자 외에 새로운 인물군을 꾸준히 물색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의장의 한 측근도 최근 “특히 영남 출신 친노의 움직임을 보면 진 후보 등이 그냥 출마한 게 아닌 것 같더라”며 “강, 진 후보가 선거에서 패하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친노 쪽은 ‘영남 후보’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여기에 천정배 법무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정 시점에 당에 복귀하면 여권 내의 대권 구도는 6, 7명이 경쟁을 벌이는 백지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김 최고위원도 다분히 이런 여권 내 새판 짜기를 염두에 두고 정 의장을 ‘습격’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호남과의 연합’ 정계 개편에는 반대?=김 최고위원이 정 의장의 정계 개편 추진 발언을 비판한 내용을 보면 노 대통령의 이전 발언과 매우 유사하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일시적 유불리가 아니라 멀리 내다보면서 자신의 정치 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선 “열린우리당 창당 정신은 어느 지역에서도 정당 간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며 민주당과의 통합에 반대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정동영 사퇴’의 이유로 당의 정체성 문제를 들었다. 당의 위기 상황이 개혁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만병통치 실용주의가 개혁의 순간마다 우리당의 정체성을 흔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내의 정 의장계를 “구시대의 낡은 사고로 끊임없이 열린우리당의 창당 초심을 훼손하는 사람과 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차라리 당을 떠나라”는 말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날 김 최고위원의 정 의장 공격은 선거 이후 여권 내 대대적인 노선 투쟁의 예고편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국 반전 전략을 둘러싸고 결국은 민주당 및 고건 전 국무총리 측과의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당내 ‘통합론자’와 이에 부정적인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의정연구센터, 영남출신그룹 등 친노 세력 간 전면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친노 진영이 최악의 경우 정 의장을 비롯한 당내 온건 보수 세력과 결별을 각오한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한나라당 내의 대권 경쟁에서 이탈한 영남의 일부 세력과 개혁 성향 인사를 아우르는 ‘대연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계 개편 논의와 관련해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연대 세력을 만드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친노 진영은 한나라당 일부까지 포함하는 대연합을 추진하되, 여의치 않으면 소수 독자 정파로 내년 대선 때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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