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탈북자 초청 뒷 얘기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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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미국 백악관이 피랍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사망)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탈북자 김한미 양 가족을 초대한 자리에서 눈에 띈 것은 주미 한국대사의 ‘빈자리’였다. 왜 주미 일본대사는 요코타 가족과 함께 행사에 참석하고, 한국대사는 초대받지 못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1일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3개월 전부터 직접 나서 요코타의 어머니가 백악관에 초대되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9월 총선 이후 차기 일본 총리로 강력히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아베 장관은 올해 초 백악관의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회의(NSC) 안보보좌관, 잭 크라우치 NSC 부보좌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런 주문을 했다. 이어 아베 장관은 도쿄(東京)에 있는 톰 시퍼 주일 미국대사에게 같은 내용을 직접 당부했다. 시퍼 대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공동구단주를 지냈던 프로야구 텍사스 레인저스팀에 지분을 투자한, 대통령의 오랜 친구다.

미 NSC는 이후 주미 일본대사관과 직접 교신하며 지난달 28일 행사를 추진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가토 료조(加藤良三) 주미 일본대사가 백악관 행사에 동석할 수 있었다.

반면 주미 한국대사관은 행사 이틀 전인 26일까지 일본대사의 참석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대사관은 김 양 가족의 백악관 초청 소식을 3주 전에 입수했다. 그러나 NSC와 국무부는 일본대사의 참석 사실을 귀띔조차 안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노무현(盧武鉉) 정부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부를 대하는 부시 행정부의 속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그린 전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1일 ‘서울-워싱턴 포럼’ 발언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이날 한국 세종연구소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왜 북한인권 문제가 미일 간에는 ‘끈끈이(glue)’가 되고, 한미 간에는 ‘쐐기(wedge)’가 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인권을 보는 현격한 시각 차이 때문에 한국대사가 백악관 행사 초청 대상으로 부적절하다는 게 백악관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지난달 26일 부랴부랴 백악관에 이태식(李泰植) 대사의 참석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2일 “청와대에서 주미 대사관에 ‘대사 참석을 추진하지 말라’는 훈령을 낸 것으로 안다”며 이 대사의 배석이 무산된 사정을 설명했다. 주미 대사관 측은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백악관이 초대하지 않았다”고만 해명해 왔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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