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후보 ‘의도된 혼선’인가…靑-한나라, 열흘간 탐색전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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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하루 앞둔 23일 밤늦게까지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심중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들조차 “노 대통령이 애초에 점찍어뒀던 김병준(金秉準) 대통령정책실장 쪽으로 탄력을 받는 것 같다”거나 “열린우리당 한명숙(韓明淑) 의원이 여전히 유력한 것 같다”는 등 엇갈린 얘기를 했다.

14일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인 이후 지금까지 후임 총리 인선을 둘러싼 기류는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인 셈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도 23일 오후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며 인물은커녕 아직 인선 방향도 정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노 대통령은 24일 낮 청와대 참모진과 총리 인선 문제에 관한 최종 논의를 거쳐 새 총리 후보자를 지명할 예정이다. 그러나 논의과정에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때에는 지명이 하루 이틀 늦춰질 공산도 있다.

노 대통령이 이렇게 깊게 고심하는 요인은 임기 말에 예상되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누가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느냐는 ‘정치력’ 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이 21일에만 해도 “코드 인사인 김 실장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가 22일에는 “여당 당적을 가진 한 의원은 절대 안 된다. 차라리 김 실장이 낫다”는 쪽으로 급선회한 것도 적잖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나라당 이방호(李方鎬) 정책위의장은 23일 오후 “처음에 김 실장은 코드인사이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반대하자 김 실장 쪽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 아니다’라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고 김 실장 선호 쪽으로 바뀐 배경을 설명했다.

거꾸로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고도의 정치게임을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원만형’인 한 의원과 ‘코드형’인 김 실장 카드를 동시에 공개하면서 야당이 보일 반응을 미리 예상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은 한-김 카드를 동시에 던짐으로써 애초에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야당이 거부했던 ‘김병준 카드’를 되살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 셈이다.

당초 청와대는 ‘분권형 책임총리’ 기조를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김 실장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검토했다.

이는 17일 여야 5당 원내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테니 코드로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 수석비서관이 고사하고 김 실장에 대해선 한나라당이 비토하자 청와대는 총리 인선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비교적 정치색이 엷고 ‘여성 총리’라는 강점을 지닌 한 의원이 급부상했다. 하지만 22일 청와대는 다시 김 실장과 한 의원을 병렬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열린우리당 여성의원 18명이 23일 한 의원의 총리 임명을 청와대 쪽에 강하게 촉구하고 나선 것도 막판 변수가 될 것 같다. 이 자리에서는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을 위해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한 의원의 당적 이탈도 감수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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