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의 근본은 성의에 있다”…‘소복시위’푼 김종말 씨 사연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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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만난 김종말 씨는 자신의 말을 성의껏 들어준 담당 검사를 ‘검사님’이라고 불렀다. 김 씨는 “검찰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 씨가 올해 7월 8일 빗속에서 소복차림으로 혼자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홍진환 기자
2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만난 김종말 씨는 자신의 말을 성의껏 들어준 담당 검사를 ‘검사님’이라고 불렀다. 김 씨는 “검찰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 씨가 올해 7월 8일 빗속에서 소복차림으로 혼자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홍진환 기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목민심서 ‘형전육조(刑典六條)’ 맨 앞부분에서 ‘청송지본 재어성의(聽訟之本 在於誠意)’라고 했다. 송사(수사와 재판)의 근본은 성의를 가지고 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 앞 등에서 3년 넘게 소복차림으로 시위와 농성을 하다 최근 시위를 그만두고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가 검사에게 감사의 선물까지 보낸 김종말(金宗末·63·여) 씨의 사연은 이처럼 법의 근본이 성의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2005년 마지막 ‘법-사람-세상’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법이 사람과 세상의 신뢰를 받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조명해 본다.》

“이제 가슴속에 꽉 맺혀 있던 한(恨)도 많이 풀어졌습니다.”

23일 5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김 씨는 이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소복을 입은 채 자리를 깔고 앉아 시위와 농성을 해 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시위를 계속했다.

그런 그의 사연을 본보는 7월 11일자 ‘법-사람-세상’에 담아 보도했다.

그랬던 그의 입에서 ‘검사님’ 소리가 나왔다. “검사님이 고맙다”고 했다. 시위와 농성은 완전히 접었다. 김 씨는 지난달에는 마산에서 직접 딴 홍시 한 상자를 검사에게 보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무엇이 김 씨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그가 시위를 시작한 건 아들 노모(33) 씨 때문이었다.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들어갔다가 2002년 8월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해 식물인간이 됐다. 아들은 회사에서 ‘왕따’에 시달렸다고 한다.

김 씨는 회사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산업재해도 인정되지 않았다.

김 씨는 회사 앞은 물론 청와대와 검찰청, 법원 등으로 장소를 옮겨 시위를 계속했다. 그동안 뿌린 유인물이 2만 장을 넘었다. 이로 인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위반과 업무 방해 혐의 등으로 수시로 경찰서와 검찰청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김 씨는 말했다. “아줌마, 도대체 얼마를 받으려고 이러는 거요?” 김 씨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받은 것은 욕설과 싸늘한 의심의 눈길뿐이었다고 말했다.

8월 9일 김 씨는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하다 구청 공무원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구속됐다. 경찰서 유치장과 구치소에서는 4일 동안 단식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 씨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김웅(金雄) 검사에게 배당됐다. 김 검사는 김 씨를 조사실 대신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어머니, 저는 고향이 순천입니다. 순천이면 마산하고 가깝지 않소. 아드님이 학교(서울대) 후배니까 저도 어머니처럼 생각할 테니 다 말해 보소. 뭔 한이 그리도 많소.”

김 검사는 성의를 다해 김 씨의 말을 들었다. 도청사건 수사 때문에 며칠씩 밤을 새우는 상황이었지만 20일 동안 거의 매일 김 씨를 만나 말을 들어 주었다. 김 씨 아들이 정말 억울한 사고를 당했는지 검토하고 도와줄 방법이 있는지도 살펴봤다.

“확인해 보니 어머니 말이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어머니가 오해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김 검사는 김 씨의 아들이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법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검사는 조사가 끝난 뒤에는 사무실 밖까지 따라 나와 허리를 굽히고 “어머니 오늘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어느덧 김 씨는 김 검사를 ‘검사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김 씨의 구속 기간이 만료될 즈음 김 씨는 변해 있었다. 다시는 시위를 하지 않기로 김 검사와 약속도 했다.

김 검사는 8월 30일 김 씨를 이례적으로 ‘구속 취소’로 풀어 줬다. 김 씨는 김 검사와 한 약속대로 고향으로 내려가 아들의 병간호에 열중했다.

10월 28일 김 씨의 아들은 2년 가까이 끌어온 재판에서 산재를 인정받았다.

김 씨는 “김 검사님을 만나고 난 뒤 3년 동안 가슴속에 쌓였던 울분이 많이 풀어졌다”며 “검찰이나 법원이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아픈 가슴을 쓰다듬어 주면 데모 같은 것은 하라고 해도 안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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