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심과 거리 먼 청와대版‘시대정신’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08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이긴 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었기 때문에 당선됐다”고 말했다. 그 ‘시대정신’은 바로 ‘탈(脫)권위, 탈권력’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그제 “검찰도 시대정신에 따라야 한다”며 강정구 교수 구속을 막아 낸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법무부 장관이라는 ‘더 큰 권력’이 검찰총장이라는 ‘하위 권력’을 제압한 경우에 해당한다. 검찰의 강 교수 구속 의견은 ‘권력 남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립적인 포털 사이트의 조사 결과 누리꾼의 70%는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반대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강 교수 구속에 대해서는 46%가 찬성하고 37%가 반대했다. 그렇다면 문 수석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고 주장한 지휘권 발동을 ‘민주적 통제’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탈권력의 시대정신’에서 ‘통제의 시대정신’으로 회귀한 것 아닌가. 현 정권은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를 버렸다’는 것을 ‘치적’으로 자랑해 왔다.

물론 검찰의 권력 남용은 견제해야 한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건강한 통제는 헌법재판소와 법원, 그리고 국회와 여론이 하는 것이다. 검찰권 운용에 관해 “가치와 시대정신의 최종 해석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문 수석의 말은 ‘충성의 과시’일지는 몰라도 위험한 권위주의적 발언이다. 더구나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황에서 절실한 것은 검찰에 대한 정권의 통제가 아니라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일이다. 검찰 개혁이 ‘검찰 길들이기’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라의 진로(進路)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누적된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 선진화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편 가르기’로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고, 국민의 길과 거꾸로 가는 코드를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것도 민의를 거스르는 ‘코드 독선’과 무관하지 않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