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따로 아리랑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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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이 단군의 후손들을 하나로 묶는 겨레의 노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방이나 직장, 학교에서의 여흥 시간에 이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리랑은 우리가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할 때 주로 부르는 특별한 노래인 셈이다.

기자는 일본의 한 작은 가라오케에서 한국의 대표적 노래인 아리랑을 듣고 싶다는 일본 지인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곤란해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잡은 적이 있다. 모니터의 가사를 따라 하면 쉽게 한 곡 부를 줄 알았는데 도대체 무슨 아리랑인지 가사는 무려 6절까지 이어졌다. 끝날 듯하면서도 계속되는 노래에 진땀을 흘렸지만 면면히 내려 온 한민족의 정한(情恨)이 아리랑에 담겨 있음을 절감했다.

지금 평양에선 아리랑 공연이 한창이다. 이름만 아리랑일 뿐 노동당 창건 60주년(10월 10일)을 기념하는 집단체조와 카드섹션, 노래와 춤이 아우러진 대규모 공연이다. 이를 관람하고 돌아온 남측 관광객들은 10만 명이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공연의 규모와 내용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기자도 그랬다. 5년 전인 2000년 10월 23일 저녁 평양 5·1경기장에서 노동당 창건 55주년을 기념하는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이란 집단체조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북을 동행 취재 중이었기 때문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올브라이트 장관 등과 함께 귀빈석에서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 미동도 하지 않던 10만 명의 공연진과 관람객이 김 위원장이 입장하자 일제히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열광하던 충격적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북한의 집단주의 원칙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처럼 정교한 공연으로 그곳에서 눈앞에 펼쳐졌다. 그 공연에서 북한의 아리랑을 처음 들었다. ‘헤어져 얼마냐 아리랑 아리랑 반세기 아픔이 가슴친다…이대론 못참아 아리랑 아리랑 장벽을 부수고 하나되자 하나되자…자주의 새날을 앞당기자.’ ‘통일경축아리랑’이라는 이 노래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환영곡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북한엔 ‘강성부흥아리랑’이란 것도 있다. ‘일심으로 뭉쳤으니 두려움 없어라/철벽으로 뭉쳤으니 끄떡없어라/태양조선 강해가니 존엄 높아 아리랑….’ 이 곡은 김 위원장이 특히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지시로 만들어져 2001년 8월 북한 언론매체를 통해 처음 보급됐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에도 영천아리랑 등 민족 전래의 아리랑이 있다.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북한 여가수 이경숙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곡에는 ‘노래도 아리랑 곡조가 좋아/멀리서도 정답게 불러보았소’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이 체제 선전을 위해 만든 아리랑 노래와 공연에선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기 어렵다. 정치적 이념으로 빚어낸 아리랑은 그들만의 ‘따로 아리랑’일 뿐이다. 아리랑에서조차 남북이 이질감을 느껴선 곤란하다. 온 겨레가 가슴을 열고 함께 부를 수 있는 게 진짜 아리랑 아니겠는가.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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