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前국정원장 “99년 기자와 통화 감청당했다”

  • 입력 2005년 9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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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 정부 첫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李鍾贊·사진) 씨는 27일 검찰이 전직 국정원 직원 집에서 압수한 DJ 정부 당시 도청 테이프에 담긴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1998년 3월 국가안전기획부장에 취임해 1999년 1월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칭한 이후인 1999년 5월까지 국정원장으로 재직했다. 다음은 이 전 원장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

―검찰이 압수한 도청 테이프는 이 전 원장과 당시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 기자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1999년 10월 언론대책 문건 파동 때 문 기자와 통화했고, 국정원이 그 통화를 감청한 것이 사실이다. 그 테이프가 남아 있다가 최근 검찰에 압수됐을 수 있다고 본다.”

―당시 국정원이 이 전 원장의 통화를 감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9년 5월 국정원장에서 물러나면서 개인 사물을 갖고 나온 게 있는데, 당시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 기자가 그중에서 이른바 언론대책 문건을 절취해 한나라당에 전달했다. 한나라당은 이 문건이 ‘이강래(李康來) 의원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국정원과 여권의 언론 장악 음모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폭로해 파동이 빚어졌고 그 문건이 나와 관련 있는 것이란 얘기가 들렸다. 나로선 전혀 기억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내 후임인 천용택(千容宅) 당시 국정원장에게 물어 보니 천 원장은 그게 내 사무실에서 나간 것이며, 문 기자가 작성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당시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던 문 기자와 통화했더니 ‘그건 그냥 참고용으로 만들어 드렸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국정원 엄익준(嚴翼駿) 차장이 나와 문 기자가 통화한 내용이 들어 있는 테이프를 갖고 있다고 일러 줬다. 경위는 모르지만 통화를 감청했던 것이다. 엄 차장은 그 테이프를 내게 주겠다고까지 했는데 파문을 우려했는지 실제로 주지는 않았다.”

―이 전 원장은 이전에 엄 차장 시절 국정원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내가 국정원장을 그만둔 뒤 엄익준 씨가 국내담당 차장으로 국정원에 복귀했는데 엄 차장 시절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는 지적이 나오긴 했다.”

―국정원이 DJ 정부 시절의 도청을 고백한 후인 8월 22일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전 국정원장과 함께 김승규(金昇圭) 현 국정원장을 만났을 때 무슨 얘기를 했나.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의 국가안전기획부 X파일은 밥 먹는 자리의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전화 도청이나 휴대전화 도청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전화 도청 문제를 끼워 넣어 DJ 정부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은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지금 보면 X파일은 간데없고 전화 도청 얘기만 남은 것 아니냐. 우리는 이걸 과거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더 큰 것을 터뜨린,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을 치는 척하면서 실제론 서쪽을 친다는 뜻)라고 보는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에 가서 DJ 정부 시절의 도청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DJ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도청이 있었다고 믿을 근거가 없다. 어쨌든 적어도 나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추호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을 한 게 없다.”

―아랫사람이 임의로 도청할 수도 있지 않나.

“그 당시는 서슬 퍼런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국정원에 와서 구내방송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정치 개입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직원들 입장에서 자의로 슬쩍 도청한 뒤에 ‘이런 좋은 정보를 입수했다’고 생색내며 보고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안 됐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이종찬씨 “DJ정부 국정원, 前원장도 도청”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전직 국정원장까지 도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종찬(李鍾贊·사진) 전 국정원장은 2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1999년 5월 국정원장에서 퇴임한 뒤 10월에 이른바 ‘국정원 언론 장악 문건’ 파동이 불거졌을 당시 문건 작성자인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 기자와 통화한 내용을 국정원이 ‘감청’했다”고 밝혔다.

이 전 원장은 “당시 국정원 엄익준(嚴翼駿) 국내담당 차장이 나와 문 기자의 통화 내용을 알고 있었고, 감청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며 “국정원이 나와 문 기자의 통화를 어떻게 감청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감청이란 표현을 썼으나 이 경우 영장이나 대통령의 승인 등 합법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는 도청(불법 감청)에 해당된다.

이와 관련해 검찰도 최근 국정원 전직 과장의 집에서 압수한 DJ 정부 시절의 도청 테이프 1개가 이 전 원장과 문 기자의 대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이날 문제의 도청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던 국정원 전직 과장을 불러 테이프 작성과 입수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백(李鍾伯)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최근 압수한 도청 테이프가 이 전 원장과 문 기자의 대화 내용인가”라는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의 질문에 “확인 중”이라고 대답했다.

검찰은 이 도청 테이프에 나오는 대화자가 이 전 원장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대검찰청 등에 성문(聲紋) 분석을 의뢰할 방침이다.

검찰은 최근 2002년 대선 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 등이 공개한 ‘국정원 도청 문건’의 전달자로 알려진 국정원 직원과 담당 국장도 불러 조사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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