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조선 인사들 불러 치열하게 논쟁하라”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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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전방위적이고 공격적으로 국정 홍보에 나서고 있다. 최근 청와대는 중앙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전문가 100여 명을 ‘중요 정책 고객’으로 선정해 쌍방향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또 정부 각 부처는 올해 초 홍보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뒤 정부의 정책이 언론에서 기사나 칼럼 등을 통해 어떻게 보도되는가를 면밀히 모니터링(점검)하고 있다. 아울러 중앙행정기관은 정책 홍보 대상자인 ‘정책 고객’ 1250만 명의 e메일을 확보해 이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국정 홍보를 펴오고 있다.》

▽“칼럼 잘 읽었다는 격려전화 받고 놀랐다”=국정홍보처는 올해 5월부터 언론 보도에 즉시 대응하기 위해 ‘정책보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건전비판’으로 분류된 칼럼을 쓴 필자에게는 청와대나 국정홍보처 관계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본보가 중앙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인사 중 무작위로 14명을 뽑아 전화 통화한 결과 이 중 6명이 청와대나 정부 쪽에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거나 수시로 e메일을 통해 정책 홍보자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남대 A 교수는 “최근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실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신문에 쓴 칼럼에 대해 고맙다는 취지의 얘기를 하더라”고 전했다.

고려대 B 교수도 “7월 초 한 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는데 국정홍보처에서 ‘좋은 칼럼 잘 읽었다’는 격려 전화가 와 솔직히 좀 놀랐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여론 주도층에 대해 정책 설명 차원을 넘어 사실상 ‘관리’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한 상황인 것이다.

▽공격적인 대응=8월 말까지 ‘정책보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한 정부 부처의 언론보도 분류 건수는 1384건에 이른다. 유형별로는 △건전비판 433건 △정책참고보도 379건 △문제보도 197건 △문제성 보도 375건이다.

국정홍보처의 설명에 따르면 건전비판은 부처 입장에서 반론을 펼 수 없는 비판 기사를 의미하고 정책참고보도는 대체로 맞는 기사이나 해당 부처 입장에서 할 말이 없지 않은 기사를 뜻한다.

또 문제보도는 오보를, 문제성보도는 오보성이나 맞는 부분도 약간 있는 기사라는 것. 하지만 엄격히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국정홍보처 관계자의 말이다. 이 가운데 문제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신청이나 소송 등으로 적극 대응한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판을 사전에 통제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달 중앙대 행정학과 조성한(趙成漢) 교수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정부 규제개혁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하려다 국무조정실 측에서 10여 군데 수정을 요구받고 결국 발표를 포기했다.

최근 정책토론회를 준비하던 한 정부 부처는 청와대 측으로부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쪽 인사를 패널로 등장시켜 치열한 논쟁을 벌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토론의 각을 세워 ‘비판언론’의 문제점을 드러내도록 하라는 취지로 알려졌다.

여론의 광장에서 정부의 의지를 적극 관철하고, 비판론은 최대한 억제되도록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점 없나=정부의 ‘정책 고객’ 명단 가운데 자발적으로 각 부처 홈페이지의 e메일 클럽 등에 가입한 사람은 10%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명단에 포함됐다는 얘기다. 이런 탓에 정부기관으로부터 e메일 정책자료를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거부감이나 무관심에서 e메일을 아예 열어 보지도 않고 있다.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1250만 명에게 보내진 정책자료를 열어보는 비율은 평균 11.5% 선”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C 교수는 “어떻게 내 e메일 주소를 알았는지 오래전부터 청와대발로 국정홍보 메일 같은 게 오고 있지만 열어 보지 않고 삭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인 K 씨는 “최근 청와대에 있는 지인(知人)으로부터 ‘중요 정책 고객’ 명단에 넣겠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왠지 ‘관리’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방홍보 대신 선제홍보하라”▼

청와대와 정부가 공격적인 선제 홍보전에 나서고 있는 것은 노 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말부터 ‘언론과의 경쟁관계’를 강조한 데서 비롯됐다.

노 대통령은 4월 25일 국정홍보처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 “언론에 끌려갈 게 아니라 정부가 사회적 의제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소방홍보가 아니라 사전에 선제하는 홍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7월 18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서는 “모든 공무원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정책고객 명단을 구축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정책품질을 관리하고 홍보를 관리하는 것은 새로운 행정의 혁신”이라며 전 공무원이 적극적인 홍보전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정치권에서는 “현 정부가 낮은 지지도 때문에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국정의 홍보보다는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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