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 임대주택]영세민 둥지 만들기 시작부터 구멍

  • 입력 2005년 7월 21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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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구 임대주택 사업은 정부가 도시 영세민의 주거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입주자들의 만족도가 높아 성공한 정책이란 게 자체 평가였다. 하지만 실제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범대상주택 503가구 가운데 당초 목적대로 도시 영세민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사용되는 주택은 40%를 밑돌고, 3분의 1은 시행 10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빈집으로 남아 있다.》

○ 빈집 왜 많나

빈집이 많은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서둘러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범주택에 대한 실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범주택 사업자인 주택공사가 주택매입 공고(2004년 6월 14일)를 내고 1차분 59개 동(棟) 392가구를 매입(2004년 9월 7일∼10월 8일)하기까지는 3개월 안팎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주공은 매입을 신청한 249개 동 1562가구에 대해 20일간의 서류 검토와 12일간의 실태조사를 했다. 실태조사 기간만 보면 하루에 130가구를 조사한 셈이다.

지난해 9∼11월 매입한 주택의 28% 정도인 140가구가 아직까지 기존 전세계약이 끝나지 않아 영세민용 임대주택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실태조사가 부실했음을 보여 준다.

주공 관계자는 “일부 주택은 내년 이후에나 전세계약이 끝난다”며 “시범사업이 결정되고 물량을 확보하기까지 촉박한 일정에 맞추다 보니 생긴 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입주자 자격이 까다롭고 선정 과정이 4개월 이상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점도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 비효율적 운영으로 예산 낭비

다가구 임대주택 1가구를 매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7000만 원. 정부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503가구의 매입비만 352억1000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주공은 또 매입한 임대주택을 준공한 지 5년 된 주택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가구당 500만 원의 개보수 비용을 책정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25억1500만 원.

따라서 입주율이 40%를 밑돈다는 것은 수백억 원의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빈집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적잖은 액수라는 게 주공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초 일부 시범주택 입주자를 조사한 결과 만족도가 높게 나왔다면서 시범사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사업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에 대해 주공 관계자들은 “최소한 시범사업을 1년 정도 해 본 뒤 사업 확대 여부를 결정했어야 하는데 너무 서두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 매입주택 선정부터 꼼꼼히

한국주거학회가 올해 초 시범주택 거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입주자들의 만족도는 도시 외곽에 세워진 영구임대아파트 등 기존 임대주택보다는 높게 나타났다.

임대료가 주변 임대료의 30% 수준으로 낮은 데다 도심에 위치해 출퇴근에 유리하고 주공의 관리서비스가 비교적 충실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부 계획대로 다가구 임대주택 사업을 계속 추진하되 매입대상 주택 선정과 입주자 모집 절차나 과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매입주택을 정할 때 기존 전세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았느냐에 대한 평가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대 김미희(金美希) 생활환경복지학과 교수는 “입주자 사전예약제를 도입해 입주대상자를 미리 선정하거나 입주자 모집공고일을 정기화해 입주대상자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조기현(서울대 노어노문학과 4년) 손민정(연세대 경영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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