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판문점 방문 “분단 현장 마음속 깊이 담고 간다”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코멘트
서울평화선언 채택을 처음 제안했던 헝가리 작가 티보 머레이 씨(오른쪽)가 27일 판문점을 찾아 영국 작가 마거릿 드래블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1953년 북한군 종군기자로 종전 협정을 취재한 그는 이날 52년 만에 판문점을 다시 찾았다. 판문점=연합
서울평화선언 채택을 처음 제안했던 헝가리 작가 티보 머레이 씨(오른쪽)가 27일 판문점을 찾아 영국 작가 마거릿 드래블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1953년 북한군 종군기자로 종전 협정을 취재한 그는 이날 52년 만에 판문점을 다시 찾았다. 판문점=연합
“1953년 와 본 후 52년 만에 다시 이곳에 왔는데…아직도 분단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 실감나게 상상되지 않았는데….”

27일 판문점. 6·25전쟁 때 북측 종군기자로 휴전협상을 취재했던 헝가리 작가 티보 머레이 씨는 마치 만물이 정지한 듯한 판문점의 긴장감 속에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를 비롯해 26일 폐막한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세계 저명 작가 15명과 시인 고은(高銀), 소설가 황석영(黃晳暎) 씨 등 한국 문인 14명은 27일 판문점을 방문해 분단의 현장을 그들의 상상력 깊숙한 곳에 깊이 새겼다.

포럼 내내 언어와 논리의 성찬(盛饌)을 벌였던 작가들은 판문점에서만은, 차마 말로는 분단의 비극성을 표현하기 어려운 듯 말을 아끼며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씨는 남북 군인들의 삼엄한 경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동경비 구역에서 “노코멘트”라며 말을 아끼다가 “이곳 풍경을 마음속에 담고 간다”고 말했다.

독일 시인 볼프 비어만 씨는 “독일은 남북한보다 훨씬 부드러운 분단을 거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머레이 씨는 “온갖 감정들이 내 곁을 스쳐간다. 원래 형제였던 군인들이 여전히 서로를 적으로 쳐다보며 서 있다. 인류와 유엔, 갖가지 체제에 부끄러움을 가져다주는 남북한 분단이 어서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들은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인마을의 북하우스를 방문해 ‘서울평화선언’을 발표했다.

작가들은 이 선언에서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핵무기와 화학무기,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들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극단적 광신주의와 정치 이데올로기, 그리고 문화적 쇼비니즘은 전쟁과 폭력의 정치학이 되고 있다”며 “이런 것들은 이성의 실패이자 무능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작가들은 “우리는 핵무기의 위협 아래 있는 나라에 모였다”며 북한 핵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뒤 “분단을 초래한 문제점들과 그로 인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긴장에 대한 평화적 해결책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선언문은 머레이 씨가 제안했으며 포럼에 참가한 12개국의 저명 작가 19명 가운데 16명과 국내 작가 62명이 서명했다.

한편 고은 씨는 이날 선언문 발표 후 “지난해부터 남북한 작가들이 추진해 온 ‘남북작가대회’가 곧 성사되게 됐다”며 “이르면 6월 28일 평양에서 대회가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판문점=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