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축구관중 격렬항의]“통제사회의 군중소요 희귀한 일”

  • 입력 2005년 3월 31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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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북한과 이란의 경기가 끝난 뒤 발생한 북한 관중의 소동에 대해 외신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페널티킥을 인정하지 않은 시리아 주심의 판정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평소 외부인의 눈에는 전혀 띄지 않던 ‘통제사회 내부의 소동’이었다는 것이다.

AP, AFP, 로이터, 교도 등 외국 통신사들은 서울 또는 평양발로 사건의 전말을 보도하면서 “세계가 북한의 군중 폭력을 엿본 드문 기회”(로이터), “북한의 군중 소요 발생 뉴스가 국제 언론에 잡힌 것은 희귀한 일”(AFP) 등으로 소개했다.

외신들은 당시 경기장에서는 “이란 선수들에게 병과 돌, 의자 등이 날아가 인민보안원(경찰)이 트랙을 따라 경비선을 쳤고, 경기장 밖에서도 경찰이 군중을 차단했다”면서 이란 선수단의 말을 인용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AP는 경기장 내 관중이 7만 명이었다고 보도했고, 로이터는 경기가 끝난 뒤 2시간 동안 경기장 밖에 모여 있던 군중이 수천 명이었다고 전했다.

6월 8일 북한과의 원정경기를 앞둔 일본이 당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일본 관방장관은 “평양에서 열릴 북-일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에서 일본 선수와 관광객들의 신변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북측에 촉구했다.

산케이스포츠는 “북한은 3연패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일본과의 홈경기에서 목숨 걸고 공격해 올 것”이라며 북한 관중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聖地’ 김일성경기장 의자 내던져▼

지난달 30일 북한 응원단이 수많은 외신기자들의 면전에서 김일성경기장의 의자를 떼어내 던지는 장면은 2003년 8월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새겨진 현수막이 비를 맞는다며 눈물을 흘리던 여성 응원단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소동이 벌어진 경기장은 김일성 주석의 이름을 딴 ‘성지(聖地)’다. 이런 곳의 기물을 고의로 파괴하면 ‘정치적 중범죄’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소동이 벌어진 것은 응원단의 분노가 그만큼 컸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화면에 비친 응원단은 대부분 북한 돈으로 3만 원(약 12달러) 이상 나가는 비싼 고급 외투를 입고 있었다. 동원된 ‘핵심계층’인 듯했다. 그런 사람들이 인민보안원(경찰)들의 제지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란과의 경기 이틀 전 북한 중앙TV는 바레인과의 경기를 방영했다. 역시 심판의 편파판정에 분노했던 경기였다.

그때의 ‘억울함’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안방에서 편파판정을 당했다고 생각한 북한 주민들은 3전 전패의 울분까지 더해 분노를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패전 경기와 응원단의 항의 모습을 북한TV가 녹화 방영한 것도 이례적이다. 괜히 종전처럼 ‘보도통제’를 했다가는 주민들의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한 듯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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