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앞장서 ‘외교 전면戰’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53분


코멘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3일 일본을 향해 다시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한일관계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에는 ‘뿌리를 뽑겠다’,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라는 날이 선 용어들이 담겼다. 노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왜 이렇게 격정을 토로했는지, 무엇을 의도했는지 짚어 본다.

▽패권주의 경고=노 대통령은 독도 및 역사왜곡 문제,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신사 참배 등 3가지를 ‘패권주의의 부활’로 규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 글에서 “일본이 그간 자위대 해외파병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 이제는 재군비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노 대통령은 당초 미국이 나서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제어하고, 중국의 동북아 패권주의를 견제하는 균형자 역할을 해 주길 바랐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적극적으로 일본의 국제적 진출을 도와주는 상황으로 가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노 대통령의 글에 일본뿐 아니라 미국을 향한 메시지까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노 대통령은 이날 “일본이 아시아와 세계의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려고 한다면 역사의 대의에 부합하게 처신하고, 확고한 평화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라는 해석이 많다. 일본이 패권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노 대통령의 시각에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동북아 균형을 깨고, 한국의 입지를 급격히 좁힐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란 것.

▽내부적 자신감의 표현?=노 대통령의 이날 글을 국내 정치상황과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한일 갈등이 고조된 이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10% 이상 상승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최근 40%대로 올라섰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이 ‘잘한 분야’로 외교안보 부문이 꼽힌 점도 공격적인 외교 행보를 가능케 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일 강경노선 전환이 국내용이라는 해석은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동북아 균형자’와의 관계=노 대통령의 이날 글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는 변화될 것”이라며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강조한 22일 육군3사관학교 임관식 연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동북아에서 할 말을 하겠다는 것이고, 그 정도의 힘은 갖췄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동북아에서 전통적으로 유지돼 온 한국-미국-일본 남방 삼각구도와 북한-중국-러시아 북방 삼각구도가 변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동북아 균형자 역할은 우리의 힘이 뒷받침되고 관련국이 우리 역할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현실적으로 미국 일본 중국을 상대로 우리가 이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교 완충지대 없앨 우려”=정동영(鄭東泳)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은 22일 “일본이 과거사를 다시 끄집어내 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덮고 조용조용 가는 것은 대안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정공법을 선택한 것”이라며 정부의 대일 드라이브가 전략적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외교 전면에 나섬에 따라 관련국과의 갈등을 최종 조율할 수 있는 외교적 완충지대가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를 정면 비판한 점은 정상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의 여지를 매우 좁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권진호(權鎭鎬)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는 계속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상들이 계속 만나 대화를 해야 한다”며 정상 간 대화채널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