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후원금 분석]고액기부 5명중 1명 ‘얼굴없는 돈’

  • 입력 2005년 3월 22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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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정된 정치자금법에 따라 사상 최초로 22일 고액 정치자금 기부자 리스트가 공개됐지만 직업을 기재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기부자가 많아 투명한 정치자금 기부문화를 구현한다는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간 120만 원 이상, 500만 원 이하(1인당 기부 한도)를 기부한 고액기부자 명단을 공개토록 한 정치자금법에 따라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유지담·柳志潭)가 발표한 ‘고액기부자 명단’에서 연인원 4287명의 기부자(중복 기부 포함) 중 901명의 신고기록에 직업이 적혀 있지 않았다.

▽숨어 있는 고액기부자=직업이 표시되지 않은 기부 신고 비율은 무려 21%에 이른다. 고액기부자들은 지역 선관위에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를 신고하게 돼 있다. 일반 국민이 고액기부자의 신분을 쉽게 알려면 그 사람의 직장과 직위 즉 직업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반에 공개되는 내용은 이름과 주소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직업을 밝힌 사람들조차 구체적인 회사와 직위를 밝히지 않고 ‘회사원’ ‘자영업’ ‘사업’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적은 경우가 적지 않다. 직업 구분 기준이 없는 현행법의 허점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분석 결과 고액기부자 중 기업체 대표의 비율은 8.9%다. 하지만 기업체 대표들 중 상당수는 ‘회사원’ 등으로 지위를 흐려 신고한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의 경우 기부자 19명 중 15명을 차지한 ‘회사원’들이 100만∼500만 원을 냈다. 강 의원은 “예전 재정경제부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연을 맺은 중견 기업인들이 있고 종친회 인사나 강연회에 나가며 친분을 쌓은 회사원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회사원들은 아니라는 얘기다. 기부자 41명이 모두 ‘회사원’인 같은 당 이석현 의원 측은 “이 의원의 전북 익산시 남성고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들 중 기업체 중역으로 있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돈을 낸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에게 125만 원을 기부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사 대표이사도 ‘회사원’으로만 적혀 있다.

▽업무 관련성 기부는 없나=비교적 신원이 확인된 고액 기부자들 중에는 업무 관련성이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기부한 경우도 있었다. 국회 산업자원위 소속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오강현 한국가스공사 사장(130만 원), 김진모 강원랜드 대표(140만 원),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3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관에 임명된 후인 지난해 12월 주만길 한국의약품도매협회장에게서 5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건설교통위 소속의 열린우리당 장경수 의원은 감정평가협회 김영도 회장에게서 지난해 11월 500만 원을 기부받았다. 건교위 소속의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도 권오형 건설협회장에게서 200만 원을 후원받았다.

하지만 이를 직무 관련 기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해당 의원들의 반박이다. 이광재 의원 측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모든 기업과 의원이 다 의심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분석 표 보기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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