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 보유 첫 공식선언]설연휴 마지막날 세계 뒤흔든 北 ‘폭탄발언’

  • 입력 2005년 2월 10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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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또 ‘벼랑끝 전술’19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촬영한 북한 영변 25MW급 원자로 내부. 북한은 10일 외무성 대변인 발표를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北 또 ‘벼랑끝 전술’
19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촬영한 북한 영변 25MW급 원자로 내부. 북한은 10일 외무성 대변인 발표를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 선언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는 물론 남북, 북-미 관계가 본격적인 긴장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북한 왜?=정부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이사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주장은 6자회담에서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여러 차례 간접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언급했지만, 미국이 핵무기 보유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이번에 직접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 5개국 사이에 “이제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적극적인 회담 재개 노력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이 핵 보유 선언을 통해 유리한 협상 환경을 조성하기에 최적기라고 판단했다는 것.

그러나 한국국방연구원 김태우(金泰宇·핵전략 전공) 군비통제연구실장은 이번 핵무기 보유선언이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절박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분석한다. 김 실장은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하고 명시적인 핵 선언을 한 것은 어떤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정권만은 지켜 내겠다는 각오를 국제사회에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또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분석한 결과 정책 전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이 리비아에 정제된 우라늄을 수출했다’고 한 2일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도 북측을 직접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전망=북한이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2003년 8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회담으로 시작된 6자회담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신성호(辛星昊) 교수는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에 대해 미국이 굽히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미국도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보다는 압박을 하게 될 것인 만큼 6자회담의 틀 자체가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성명 가운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칙적 입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 목표에 변함이 없다’는 부분을 들어 미국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회담에 응하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한다.

▽핵무기 보유 선언 파문=북한의 핵무기 제조 및 보유 선언으로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국제사회가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북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제재나 핵사찰 등을 추진한다면 북한에 대한 폭격을 준비하며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의 1차 북핵 위기의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일본의 핵무장과 대만의 핵개발 추진 등 동북아 지역의 연쇄적인 핵 보유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화성(引火性) 높은 사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10일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반 장관은 이번 방미기간 중 북한의 돌발적인 선언에 대한 양국의 대응 및 6자회담 틀의 보존 문제 등을 집중 논의해 북한을 다시 대화의 틀로 복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발언 일지
날짜내용
2003년 4월 이근 외무성 부국장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나 폐기할 수는 없다. 그것들을 실험할 것인지, 수출할 것인지, 증산할지 여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2003년 4월 외무성 대변인 성명폐연료봉 8000여 개의 재처리 작업을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필요한 물리적 억제력을 갖추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003년 8월 김영일 외무성 부상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제1차 6자회담 첫날)
2003년 10월 외무성 대변인8000여 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완료했고 이를 통해 얻어진 플루토늄은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용도를 변경시켰다
2004년 2월 김계관 외무성 부상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처리(포기)할 수 있다(제2차 6자회담 폐막식 후 기자회견에서)
2004년 6월 김계관 외무성 부상핵무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고, 수출하지 않으며, 실험하지 않겠다(제3차 6자회담 참가 중)
2005년1월 김계관 외무성 부상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며 핵무기는 방어용이다(방북했던 커트 웰던 미 하원의원이 워싱턴의 한 토론회에서 전한 말)
2005년 2월 외무성 성명우리는 이미 부시 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 고립압살 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했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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