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緣’…박정희 vs 민청학련

  • 입력 2005년 1월 2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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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1974년 4월 3일 서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에서 그해 1월 8일 발표된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와 2호에 반대해 일제히 유신체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는 이날 밤 민청학련을 지원하는 사람에 대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중앙정보부 등에는 1000여 명의 학생이 연행돼 고문수사를 당했다. 이 중 200여 명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과 연계돼 있다는 이유로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 8명의 경우 사형이 집행됐다.》

▽여권 실세로 부상한 민청학련 세대=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박 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이른바 1970년대 운동권 출신은 이제 청와대와 정부 열린우리당 등 여권의 핵심 포스트에 자리 잡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해찬(李海瓚) 총리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3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대학생들을 시위에 동원하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은 ‘배후 조종’ 혐의를 받고 수배됐지만 도망을 다녀 잡히지는 않았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또한 이 사건으로 몇 개월 투옥됐다 석방된 뒤 군에 징집됐다.

* 각 인물을 클릭하면 프로필을 볼수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 교체 결정을 내린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은 당시 서울대 미학과를 다니다가 붙잡혔고 당시 애인 사이였던 부인과 함께 매형까지도 모두 붙들려갔다. 이 총리는 최근 돌베개 출판사가 주최한 ‘답사여행의 길잡이 완간 기념회’에 참석해 “유홍준 선배와는 30년 전인 1974년 이맘때쯤 서대문구치소의 아래위 층에 수감돼 서로 통방하며 의지했던 사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사형폐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유인태(柳寅泰)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철(李哲) 전 의원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을 만큼 민청학련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과거사청산국회의원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강창일(姜昌一) 의원, 같은 당 장영달(張永達) 의원, 이강철(李康哲)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 정찬용(鄭燦龍)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박정희에 대한 인식=민청학련 세대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증오’에 가깝다. ‘박정희=악의 화신(化身)’이라고 말할 정도다. 장기집권 체제에 저항하고, 유신체제를 거부했다고 핵심 인물에게 사형까지 선고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원이 250여 명인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회장 이철)의 김학민(金學珉) 사무처장은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한 박정희는 자신이 놓은 덫에 오히려 걸린 셈”이라며 “재야와 노동 종교 운동이 학생운동과 연합하는 계기가 돼 유신정권은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고 말했다.

유인태 의원은 “지금 같으면 경찰서에 끌려가 뺨 몇 대 맞으면 끝날 일이었는데, 데모했다고 대학생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형까지 시켰다”면서 유신정권에 치를 떨었다.

▽야권의 ‘민청학련’ 세대=한나라당 박계동(朴啓東), 이재웅(李在雄) 의원이 당내 민청학련 세대. 고려대 출신인 박 의원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 후 제적됐고 연세대 출신인 이 의원은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뒤 1년 정도 복역했다.

박 의원 측은 여권의 ‘박정희 지우기’ 시도에 대해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공과(功過)를 함께 봐야 한다”며 “부정적 측면만 부각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대권 주자인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는 직접적으로 민청학련 사건과 연관되지는 않지만 민청학련 지도부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됐다. 손 지사는 평소 박정희 정권에 대해 “산업화 세력의 장점은 계승하되 인권 침해 등의 그늘에선 벗어나야 한다”고 말해 왔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최근 정치권 움직임▼

2003. 3 노무현 대통령, 박정희기념관 건립 재검토 지시

2004. 3 열린우리당 주도로 친일진상규명법 제정

2004.10 정부, 박정희기념관 건립 계획 사실상 백지화

2004.11 서울 문래동 문래공원 내 박 전 대통령 흉상 철거

2004.12 친일진상규명법 개정(박 전 대통령도 조사 대상)

2005. 1 국가정보원, 박정권 시절 의혹 사건 조사 잠정 결정

외교통상부, 한일협정 문서 공개

문화재청, 박 전 대통령이 쓴 각종 현판 철거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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