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최근 평양을 방문한 미국 의회대표단에 ‘그런 사실이 없다’는 종래의 주장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10월 평양에서 미국과 우라늄 핵 프로그램 논쟁을 벌인 뒤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의 조작’이라고 부인해와 더 이상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주장이 허구로 드러난 마당에 어떻게 미 정보당국을 믿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다르다.
당장 한국 정부도 북한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한 고위당국자는 “미국이 북한의 우라늄 개발을 처음 공표한 2002년 10월 이후 몇 주 동안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며 “이 침묵을 시인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한국 정부가 전달받은 파키스탄 핵과학자의 수사첩보, 북한과 논쟁을 벌였던 당시 미 국무부 참석자들이 평양회담 직후 ‘복기’한 내용 등 관련 정보는 충분해 보인다.
문제는 6자회담으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북한의 HEU 시인이 기본전제라는 점이다. 폐기해야 할 핵 프로그램조차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면 6자회담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판단이 옳다면, 북한은 협상이 타결 국면에 접어들 때 부인해 오던 사안을 인정하는 ‘자기 부정’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걱정에 대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오히려 북한이어서 가능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 예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 크게 시인한’ 일본인 납치사건을 든다.
김 위원장이 ‘국방 책임을 지는 군부의 일부 세력이 세상 물정 모르고 그랬다’는 정도로 유감을 표시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언론의 비판이나 여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북한의 특수성이 핵 위기 타결의 걸림돌을 ‘통 크게’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관측이라도 지푸라기 잡듯 반겨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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