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南北연결 현장을 가다]분단과 화해 ‘공존지대’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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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가르는 통문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의 남측 최종관문인 금강통문. 이곳을 지나면 비무장지대의 동해선 도로를 달릴 수 있다. 금강통문을 경비하는 금강검문소 초병들이 17일 남측으로 돌아온 차량이 통문을 통과한 뒤 문을 닫고 있다. -고성=변영욱 기자
남과 북 가르는 통문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의 남측 최종관문인 금강통문. 이곳을 지나면 비무장지대의 동해선 도로를 달릴 수 있다. 금강통문을 경비하는 금강검문소 초병들이 17일 남측으로 돌아온 차량이 통문을 통과한 뒤 문을 닫고 있다. -고성=변영욱 기자
《동해선 남북 철도와 도로(국도 7호선)가 통과하는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일대는 남북교류협력과 군사 대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역설(逆說)의 현장’이다. 매일 평균 90여 대의 차량과 1000여 명의 사람이 남북을 왕래하는 곳이지만, 완전무장한 남북 병력이 독수리눈으로 상대 쪽을 감시하고 있다. 본보 취재진은 12월 1일 동해선 남북연결 본도로가 개통된 뒤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 17일 이 도로를 타고 민간인통제구역에 들어간 뒤 통일부 동해선 출입관리사무소(CIQ)를 거쳐 동해선 북방한계선인 ‘금강통문(金剛通門)’까지 달렸다. 이어 22사단 번개대대에서 18일까지 머물며 남북교류협력과 군사 대치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北으로 가는길 南측 통문서 가로막혀▼

▽북으로 가는 길=17일 오전 11시 반경 취재차량을 타고 고성군 저진검문소를 통과했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민간인통제구역.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통해 22사단의 사전 허가를 받은 비표를 제시하고, 민간인통제구역에 들어서자 도로 주변에는 ‘남북교류타운’ 건설이 한창이었다.

군사지역인데도 곳곳에 써진 ‘남북교류협력’이라는 문구와 100여 m 간격으로 설치된 대전차 방벽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대전차방벽은 잘 포장된 도로가 오히려 북측의 침투로로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설치됐다.

취재진은 동해선 CIQ에서 22사단 측이 제공한 지프에 올라탔다. 새로 개통한 동해선 본선도로 4.17km 중 북방한계선의 남측 금강통문까지 3km를 왕복 2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통문부터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측통문이 위치한 1.17km 도로는 북측의 승인을 받지 못해 들어가지 못했다.

▼매주4차례 北으로 “우리 직장은 북한”▼

교류와 협력의 현장
비무장지대 북한한계선 철책 철조망을 통해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에서 남으로 달리는 버스들이 보인다. 이곳은 남북교류협력과 군사 대치가 함께 이루어지는 ‘역설의 현장’이다. -고성=변영욱 기자

▽남북교류협력의 현장=17일 오후 1시 45분 고성군 동해선 북방한계선에 위치한 금강검문소. 별안간 사이렌이 요란스레 울리며 검문소 경비병들이 신속하게 금강통문으로 다가갔다. 동해선 북측 구간 철도 건설 자재를 운반했던 현대아산 차량 10대가 복귀하고 있었다.

인솔 책임자는 현대택배 소속 박경수(朴京洙·31) 대리와 서준범(徐준凡·27) 주임. 2003년 7월 동해선 철도 및 도로건설 작업이 시작된 이래 1년 6개월간 매주 4차례씩 북한 땅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박 대리는 “처음 북한 땅을 밟았을 때는 막연한 불안과 긴장감으로 남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상당히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1시간 후인 오후 2시 45분. 2박3일간의 금강산 관광을 마친 500여 명의 관광객을 태운 23대의 관광버스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소란스럽게 남측 CIQ로 들어왔다. 이어 14일 입북해 동해선 신호 통신과 역사(驛舍) 건축에 관한 기술지원을 마치고 4일 만에 돌아온 현대아산 김정수(金正洙·49) 역사건축단장과 이광국(李光國·37) 신호통신전력팀장이 들어왔다. 북측 기술인력과 한 달여간 일해 온 김 단장은 “직장이 북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철책엔 매서운 삭풍 “敵은 엄연히 있다”▼

군사적 대치의 현실
22사단 번개대대 야간 경계근무조가 철책을 통한 적의 침투 흔적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뒤쪽에 철책선을 따라 불이 켜져 있다.-고성=변영욱 기자

▽군사 대치 현장=17일 밤 22사단 번개대대가 경비하는 철책선. 강원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혹독한 삭풍을 뜻하는 ‘양간지풍(襄杆之風)’이 매섭게 몰아쳤다. 밤을 하얗게 밝힌 18일 새벽 최첨단 열탐지장비(TOD)로 북측을 경계하고 있던 이현신(李賢新·22) 병장은 “최근 주적개념 삭제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북한과 최일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장병들에게는 우리의 평화와 아군을 위협하는 적군이 있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18일 낮 번개대대 최북단 ○○소초. 좌측 아래쪽으로는 남북으로 연결된 동해선 철도 및 도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남측도로에는 가드레일과 가로등이 설치됐지만 북측은 도로만 뻥 뚫려 있는 것이 대조됐다.

전날 밤의 삭풍이 무색할 만큼 따스한 햇살이 비친 이날 고성능 망원경으로 바라본 북측 최전방 경계초소(GOP) 주변 운동장에는 북한 장병 3명이 나와 농구를 하고 있었다. 다른 편 초소에서도 북한 장병 1명이 외투를 벗어던지고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었다.

마침 독수리 한 마리가 ○○소초 상공에서 북녘 땅을 선회한 뒤 다시 남측으로 날았다. 동해선과 경의선처럼 ‘북으로 가는 길’이 뚫렸다지만 아직은 왕복이 번거로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비웃듯 독수리는 하늘 높이 비상했다가 북녘 하늘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위대한 수령 모독” 걸핏하면 ‘추방조치’▼

“6·15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2005년에는 남북간에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남북교류협력의 일선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남측 ‘통일역군’들은 “새해에는 북한이 그동안 보여준 잘못된 행태를 벗어나 진정한 신뢰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불평하는 북측 행태는 먼저 말꼬리 잡기. 올 4월 금강산을 찾았던 A 씨는 판매대를 운영하는 한 북한 여성판매원에게 “남북통일이 10년 안에 이뤄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A 씨의 말을 들은 북한 여성은 이유를 물었고, A 씨는 무심코 “김일성(金日成) 장군의 사망을 예견한 한 무속인이 그같이 말했다”고 답했다. A 씨는 ‘위대한 수령’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즉각 추방당했다. B 씨는 두 손과 두 다리를 높이 들어올리는 북한 군인의 걸음걸이를 흉내 냈다가 “공화국 군대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추방당했다.

김일성-김정일(金正日) 부자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김일성 배지’, ‘김정일 배지’로 불렀다가 북측 관계자의 호통을 받는 경우도 잦다. 북측 공식용어는 ‘초상휘장’이기 때문이다

고성=하태원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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