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국보법폐지 밀어붙이기]‘사회권 탈취’ 상정시도 法的효력 있나

  • 입력 2004년 12월 6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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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및 형법 보완안 변칙 상정에 대해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있을까. 핵심 쟁점은 최연희(崔鉛熙·한나라당) 법사위원장이 그동안 회의 의사진행을 거부하거나 기피했는지 여부다. 거부나 기피로 인정되는 행위가 없었다면 열린우리당이 국회법을 위반한 게 되기 때문이다.

▽여야 논란=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최 위원장이 국보법 폐지안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에 대한 의사진행 발언만 반복적으로 허용한 것은 사실상 의사진행 거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최 위원장이 3, 4일 법사위 전체회의 개회를 선포한 뒤 사회를 보면서 ‘여야 간 합의’를 촉구하는 등 회의를 정상적으로 진행했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실제 최 위원장은 회의 시간엔 위원장석을 떠나지 않았다.

▽전문가 판단=20여 년 동안 법사위 등 국회 사무처에서 근무한 한 국회법 전문가는 “열린우리당이 지나치게 나간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6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상정하려는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왼쪽).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은 의사봉을 허리춤에 감추고 회의 진행을 저지하려 했으나(가운데),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위원장석을 장악하고 선 채로 의사봉 대신 손바닥을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했다(오른쪽). 전영한 기자

그는 “최 위원장이 이틀 간 직접 회의장에 들어가 사회를 봤기 때문에 의사진행을 거부하거나 기피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는 “우회적으로 의사진행을 거부했다고 볼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열린우리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폐지안 등의 상정이 법적 효력을 얻을 경우 국회법의 ‘법적 안정성’이 손상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폐지안 상정이 법적 효력을 얻게 되면 앞으로 각 상임위에서 이틀 동안 표결을 허용하지 않는 위원장은 모두 교체 대상이 된다”며 “지금까지 위원장이 회의장에 들어가지 않는 등 명백히 의사진행 거부 의사가 확인된 경우에만 국회법 50조 5항이 적용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국회 관계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국회법은 정치행위를 대상으로 한 법이기 때문에 법적인 판단 이전에 여야가 그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합의를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사봉 사용 문제=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개회를 선언하고 폐지안을 상정하면서 의사봉 대신 국회법 책자와 손바닥으로 위원장석의 책상을 두드렸다. 이에 대해 한 로펌 소속 변호사는 “의사봉 사용은 법적 구속력보다 관습의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개회 정족수 확인 문제=최 의원이 개회 선언 당시 정족수(3명)를 확인하지 않아 회의 자체가 무효라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 반면 열린우리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최소 9명의 법사위원이 회의장에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맞섰다. 한 변호사는 “정족수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은 절차 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나 법원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에 대해서만 그 내용 및 절차의 타당성을 따지게 돼 있다. 따라서 이날 상정의 법적 효력 여부는 여야 합의나 국회 의사국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국보법폐지 날치기 상정시도

열린우리당은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원장의 사회권을 변칙적으로 빼앗은 뒤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형법 개정안 상정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에 한나라당이 ‘원천 무효’라며 반발하고 나서 회기 종료를 이틀 앞둔 정기국회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또 7일로 예정된 문화관광위와 행정자치위, 교육위 등에서 언론관련법 친일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등의 상정을 강행한다는 방침이어서 여야의 정면 격돌이 예고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법사위 최재천(崔載千) 간사는 이날 오후 4시 10분경 최연희(崔鉛熙·한나라당) 위원장이 회의실에 입장하기 전 한나라당 의원들의 저지를 뚫고 위원장석까지 나가 ‘위원장 대리 자격으로 국보법 폐지안 2건과 형법 개정안을 상정한다’고 선언했다. 최 간사는 이날 국회법 책자로 위원장석 책상을 3번 두드렸다.

최 간사 는 이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최 위원장은 3일간에 걸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기피하고 거부했다”며 “국회법 규정에 따라 위원장이 아닌 다른 정당의 간사로서 직무대행을 맡아 정상적 절차에 따라 법안을 상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사회권을 이양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 간사가 ‘법사위원장 대행’을 자임해 국보법 폐지안 등의 상정을 강행한 것은 “법적 절차를 갖추지 않은 만큼 원천 무효”라고 선언했다. 한나라당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최 위원장이 사회권을 이양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린우리당이 개의 선언도, 정족수 확인도 하지 않고 날치기를 시도했다”며 “날치기에도 기본은 있으며, 이는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국회 상임위 위원장의 사회권을 일방적으로 장악해 법안의 강행 처리를 시도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국보법 폐지안 상정 과정이 합법이냐 아니냐를 접어두고 여야 지도부가 국보법 개폐 문제를 정치적으로 절충하고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열어 국민 여론을 더 철저히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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