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대북강경책 반대’ 배경

  • 입력 2004년 11월 1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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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국제문제협의회 초청 연설에서 한미 양국 정부의 대북 인식차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로스앤젤레스=신원건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국제문제협의회 초청 연설에서 한미 양국 정부의 대북 인식차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로스앤젤레스=신원건기자
《대북 강경책에 반대입장을 표명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WAC) 연설내용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북한 핵 문제가 중대한 전기를 맞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발언 의도는 물론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정치용?…“미국에 할말은 한다”▼

이번에 노 대통령이 드러낸 대북 인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한 정권의 개혁 개방을 비교적 호의적으로 평가하거나, 미국의 대북 제재에 반대했던 것은 그동안 간간이 밝혀왔던 것이다.

그러나 2003년 2월 취임 이후 가급적이면 미국과의 시각차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자세에서 벗어나 ‘차이’ 부분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연설은 의미가 다르다.

지난 1년여 동안 노 대통령은 국내 진보진영으로부터 ‘굴종외교’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이라크 파병 결정 등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파열음도 있었지만, 이번 연설 내용은 ‘까놓고 할 얘기 다 하자’는 워낙 직설적인 내용이다. 미국측으로선 파열음 이상의 근본적인 전략과 목표의 차이까지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연설의 청중은 ‘미국’이 아니라, ‘국내 여론’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최근 “노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에 줄 것을 다 줬는데, 서운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난해에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을 때 미측 인사들에게 ‘우리는 내년 총선을 희생하면서까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돕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지도 추락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노 대통령이 국내 지지자의 요구를 외면하고 계속 미국의 요구에만 끌려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이번 연설에 배어 있다는 얘기다.

▼당당한 외교?…美대북제재론 차단▼

청와대측은 국내정치용이란 해석을 부인했다. 이번 연설은 철저하게 미국내 지도급 인사의 눈높이에 맞춰 준비했다는 것.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5일 이후 이 연설 준비에 몰두했고,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첫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원고는 최종본이 완성될 때까지 5차례나 수정이 가해졌다는 후문.

당초 연설 내용에는 한미동맹에 관한 것도 포함시키려 했으나, ‘그저 서로가 기분 좋고 뻔한’ 얘기만 하게 된다고 판단해 곧바로 북핵 문제에 대한 견해를 솔직하게 밝히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는 13일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지난 2년간 6자회담의 틀이 마련되는 등 절차 문제에 있어서는 진전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내용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즉 부시 대통령 재선 이후 북핵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미리 미측에 ‘북한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결단을 촉구해 미국내 강경파의 대북제재론에 선을 긋는 ‘정면돌파’식 해법을 내놓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위험한 게임?…美-日과 독자적 노선▼

그러나 미국은 물론 6자회담의 주요 당사국인 일본에서조차 대북 제재론이 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노 대통령의 연설은 동맹국간의 보조를 흐트려 놓아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키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노 대통령 발언을 2000년 3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획기적인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의지를 밝힌 ‘베를린 선언’ 당시와 비교하기도 한다. 당시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를 1개월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이 북한에 ‘러브콜’을 보냈던 것처럼 이번 노 대통령의 발언도 실제로는 미국이 아닌 북한을 향한 메시지였다는 해석이다. 이 경우에도 6자회담의 틀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김정훈기자jnghn@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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