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5년전과 똑같은 ‘韓-러 합의’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53분


코멘트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에너지 개발 협상, 한-러 자원협력협정 체결, 우주 및 신소재와 기계 분야에 대한 양해각서 교환, 첨단과학 분야의 협력 구체화….

얼핏 보면 지난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거둬들인 성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5년 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당시 이미 합의했던 내용들이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러는 자원과 에너지 등 경제 분야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벌써부터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들이 나오고 있다. 당장 다음 달 러시아 경제인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러 정상회담의 경제 분야 의제는 매번 표현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비슷한 내용이 반복돼 왔다는 지적이 많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이 얼마나 이행됐는지 살펴보면 더욱 실망스럽다. 1999년 5월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경제 분야 성과로 꼽힌 것은 나홋카 한국 전용 공단 건설 협정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이 사업에 대해 극동지역에 한국기업이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하고 현지 고려인들의 고용까지 가능한 ‘한-러 협력의 신기원을 열 대형 프로젝트’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공단 터는 여전히 허허벌판이고 이제 한-러 어느 쪽도 이 사업과 관련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2001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한 당시 재차 확인했던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사업도 러시아 현지에서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으로 보고 있다. 역시 정상간 합의 사항인 철도 연결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물론 한-러 경협 부진이 한국 탓만은 아니다. 러시아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때마다 이벤트성 대형 사업을 내놓고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오히려 양국간 신뢰에 금이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따라서 합의한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각오를 다져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한국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거의 5년 만에 한 번씩 이뤄졌다. 다음 정상회담에서도 이번과 비슷한 내용을 합의한 뒤 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