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먹고살게 해 달라”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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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은 “살려 달라. 먹고살게 해 달라”는 절박한 민심(民心)을 제대로 아는지, 진정으로 책임을 느끼는지 묻고 싶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추석 “모든 역량을 경제회복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빈말이 아닌 행동으로 정치와 정책 역량을 집중했는데도 1년 뒤의 경제난(難)과 민생고(苦)가 이 지경이란 말인가.

올 추석 메시지에서 노 대통령은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경제회복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희망을 갖자. 나아질 것이다”는 말도 거듭했다. 하지만 민족 대이동 중에 재확인된 민심의 주류는 ‘경제 다 죽게 놔 두고 도대체 무얼 하느냐. 제발 싸우지 말고 민생 살려 내라’였다. 국민이 보기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대통령은 ‘경제에 집중하고 있으니 나아질 것’이라고 하니 오히려 믿음도 희망도 갖기 어려운 게 아닌가.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다음 추석엔 올해의 어려웠던 살림을 추억처럼 얘기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정책은 우왕좌왕하는데 이런 막연한 희망가(歌)에 배부를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도, 여당도, 정책 책임자들도 제발 말만 앞세우지 말고, 남 탓만 하지도 말기 바란다. 근거 없이 ‘걱정 말라’고만 하면 경제를 가볍게 보는 정권이라는 의심이 커져 국민은 더 절망할 것이다. 자칫하면 1만달러 소득조차 무너질지 모르는 구조적 위기국면인데도 3만달러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성장률이 높다고 숫자놀음 해 봐야 소용없다. 경제와 민생의 실상을 바로 보고 국력과 정권 역량을 모아야 한다. 능력이 모자라면 언행이 일치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

실험은 할 만큼 했다. 성장잠재력 강화에 초점을 두지 않고는 일자리 늘리기도, 분배 개선도 안 된다. 기업하고 싶은 마음을 꺾고 경영권 위협까지 느끼게 하고서는 국제경쟁력 제고도, 투자 확대도 꿈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고 경제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며 규제를 틀어쥐고 시장을 인위적으로 재단(裁斷)하려고 해서는 국내에 남은 부(富)조차 붙잡아 두기 힘들다. 수도 이전에, 과거사 청산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정권의 명운을 걸듯이 하면서 ‘경제 전념’을 양념처럼 말한다고 민생에 희망이 생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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