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열강 新4국지]<下>中國, 제국주의 부활을 꿈꾸나

  • 입력 2004년 8월 16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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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유(未曾有)의 도전.’

미국 외교협회(CFR)가 발간하는 격월간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의 제임스 호지 편집장은 올 4월 존스 홉킨스대에서 ‘아시아로 권력이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호지 편집장이 특히 주목한 것은 동북아의 지각변동 가능성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강대했던 적이 없다. 수세기 동안 중국이 강대했을 때 일본은 가난을 면치 못했고, 최근 200년 동안은 일본이 강성한 반면 중국은 허약했다. 하지만 이제 두 나라가 동시에 강대한 시기를 맞고 있다. 미증유의 도전이 찾아올지 모른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호지 편집장은 그러면서 “미국은 이런 지각변동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예측과 전망은 이런 것이었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2010년이면 독일의 2배, 2020년이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중국은 말 그대로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할 것이다.”

하지만 주변국, 특히 한반도를 향해 밀려들고 있는 ‘중화제국의 추억’은 그런 일반적인 예측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화평굴기(和平굴起)의 실체=내년은 명나라 초 정허 함대가 서양원정에 나선 지 600주년이 되는 해다. 지금 중국에서는 ‘D-1년’ 분위기가 한창이다.

“정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를 지휘하면서 한 치의 땅도 점령하지 않고 타국을 우정으로 대했다. 이는 중국의 새 외교정책인 화평굴기(평화적으로 우뚝 일어난다)와 일치한다.”(쉬쭈위안 교통부 부부장)

그러나 고구려사 파문은 중국 정부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을 향해서는 ‘화평’을,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국에 대해서는 ‘굴기’를 구사하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한 국제문제 전문가도 “중국은 화평을 강조하지만 서방이나 주변국들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라며 “굴기라는 용어는 패권 추구와 영토 및 영향력 확장 같은 어감을 담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사실상 같은 말로 쓰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부국강병은 100여년 전 열강 각축기 때 서세동점(西勢東漸)을 당하던 청 제국의 열망이었다.

▽미중관계가 관건이다=“우리는 결국 중국이 국제사회로 돌아오도록 할 것이다. 세계혁명의 진원국으로서가 아니라, 위대하고 발전하는 나라로 돌아오도록 할 것이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닉슨독트린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1979년 양국의 수교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기본적으로 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다. 미국 또한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다.

하지만 워싱턴의 속내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물밑에서는 ‘중국 위협론’이 상존하고 있다.

척 헤이글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특히 3가지 요인이 향후 미중관계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 얼마나 협력하는가 △미사일 및 기술 확산 방지에 얼마나 협력하는가 △대만과의 양안(兩岸)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포용이냐, 대결이냐가 좌우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어느 요인도 예측 가능한 것이 없다. 특히 대만문제는 점점 ‘화약고’의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동반자 관계, 한미일 3국 협력체제가 유지되는 한 중국이 한반도를 향해 드러내고 있는 ‘제국의 추억’도 어느 정도 관리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중 포용정책(Engagement)을 접고 양국이 대결로 치달을 경우 한국은 말 그대로 ‘미증유의 기로’에 서게 될지 모른다.

▽‘한국형 주변국’의 역할모델=한국 동북아시대위원회의 한 핵심관계자는 15일 “우리는 단순한 주변국이 아니다. 오히려 조정자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한국과 중국을 방문한 미첼 리스 미국 국무부 정책실장의 말을 그 예로 들었다.

미국은 그때 동북아지역에서의 군사안보를 포함한 환경 및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다룰 차관보급 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한국 일본 러시아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중국이 거부했다. 그러자 러시아도 태도를 바꿔 ‘불가(不可)’로 돌아섰다.

리스 실장은 그 후 한국측 관계자를 만나 “만약 한국이 적극적으로 회의 개최를 제안했다면 중국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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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동북아 세력재편 배경은 北韓▼

미국의 동맹 재조정, 일본의 재무장 시도, 중국의 외교무대 전면 등장….

동북아에 신(新) 4국지 시대가 형성된 배경에는 북한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한미=‘50년 혈맹’ 한미관계에 동맹 피로 증후군이 나타난 것은 북한의 위협정도를 느끼는 두 나라의 체감온도 차이 때문이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친구(동맹)’를 고르는 방법을 바꿨다. 동맹의 기준이 소련의 팽창주의 방어에 기여한 정도에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협조했는지로 바뀐 것.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한국이 북한과 화해협력 시대를 열기 시작한 때와 맞물렸다. 김대중 정부의 일부 고위인사들은 미국이 제시한 2차 북한 핵 사태의 증거를 불신했다. 이처럼 ‘북한에는 우호적이고, 미국은 불신하는’ 국내 기류가 워싱턴에 전달되면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등급 재평가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金聖翰) 교수는 “요즘 상황이라면 미국이 한국보다 인도 파키스탄 호주 일본을 진짜 우방으로 여길 법하다”고 말했다.

▽일본=일본의 재무장 노력도 북한 위협론을 십분 활용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일본은 국내의 재무장 반대 목소리를 전반적인 반북한 정서로 묶어둔 채 방위전략을 소극적인 전수(專守) 방위에서 ‘주변의 유사(有事)’ 사태에도 개입한다는 적극주의로 바꿨다. 이런 시도는 미국이 일본을 동북아의 핵심 대리인이자 중국 견제세력으로 만든다는 전략의 산물이기도 하다.

▽중국=1949년 건국 이후 외교무대에서 본격적인 좌장(座長) 역할을 맡은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처음이었다. 중국은 이 회담에서 북한은 물론 한국 러시아를 한편으로 묶어서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제동을 걸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베이징(北京) 외교가에서는 “1년 이상 겉돌다시피 한 6자회담의 최대 수혜자는 본 회담 3차례, 실무회담 2차례를 주최한 중국”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중국이 몽골 티베트 등 저개발 주변국이 아닌 ‘중견 국가’인 한국을 겨냥해 패권적 속내를 비춘 동북공정(東北工程)도 북한과 맞닿아 있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는 중국의 변방사”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북한은 역사적 뿌리를 고구려에 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특수 관계를 고려해 사실상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고 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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