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운영 변화]‘386 코드’ 벗고 ‘현실 노선’ 선회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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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현실로 우향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실용주의에 기반을 둔 분권형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다.

▽현실 노선 전환 배경=노 대통령의 현실 노선으로의 전환은 탄핵 복귀 후부터 감지돼 왔다.

참여 정부 1년 반 동안 코드에 맞는 386 운동권 출신 등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으나 전문성 부족과 현실감 결여 등으로 인해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해묵은 성장과 분배 논쟁으로 인해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소비는 위축되는 등 경제난이 심각한 수준이며 이에 따라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도 깔려 있다. 또 탄핵 복귀 후 정체성 논란에 휘말려 국정 운영에 전념할 수 없게 된 데 대한 국면 전환의 필요성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야당의 무차별 공세에서 한발 비켜서겠다는 노 대통령의 계산도 함께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 관료 출신인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에게 ‘경제 총사령탑’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해준 것도 그런 맥락이다.

비교적 현실주의자인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에게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토록 한 것도 외교노선을 둘러싼 자주파와 동맹파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이라크 추가 파병과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외교안보 시스템의 난맥상을 대폭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대통령정치특보를 지낸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원은 “8·15 광복절을 분기점으로 일하는 대통령, 일하는 내각, 일하는 국회를 정립하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분권형 국정운영=노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정 장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잇따라 독대해 자신의 향후 분권형 정국운영 구상을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이 총리와의 역할분담론이 나왔다. 이 총리는 13일 “정치적 책임총리제가 아니라 정책적 책임총리제를 하라는 뜻”이라며 “노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곧 부총리로 격상될 오명(吳明)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하여금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를 총괄토록 한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중심의 수직적 네트워크를 분해해 내각이 서로 수평적으로 협력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게 이 구상의 핵심이다.

김종민(金鍾民) 대변인은 “대통령은 국가전략과제, 주요 혁신과제를 직접 관장하고 총리는 일상적인 국정운영을 총괄토록 한 연장선에서 유관부처별 업무 협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의 당-청 관계를 당정 관계로 전환시켜 정부 여당이 국정의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의미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조치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이 명실 공히 책임 여당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이처럼 ‘실용주의 노선’에 토대를 둔 분권형 시스템으로 국정 2기를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혁’을 추구하는 ‘두 마리 토끼 쫓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권력의 생리상 최고 권력자로서의 영향력은 유지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전술적 변신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실험적인 국정 2기 운영방식이 혼선만 빚고 노 대통령의 직할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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