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지도부 “소장파여 자제를…”

  • 입력 2004년 7월 23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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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지원과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다룬 북한 인권법이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미묘한 기류가 정치권에 형성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내 일부 소장파 의원의 ‘북한 인권법 반대결의안 제출 움직임’을 비난하면서 국가 정체성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이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소장파 의원들에게 자제할 것을 설득하면서 대외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봉주(鄭鳳株) 의원 등 열린우리당 소장파 의원들이 북한 인권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 “인권문제에 정치적 잣대를 대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공세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미온적 태도를 부각시켜 국가 정체성 논란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23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한국이 먼저 처리했어야 하는 법”이라며 “열린우리당의 젊은 의원들이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 운운하는데 인권은 독재국가도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로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이어 “옆집에서 아동을 학대한다면 이웃이 문제를 제기하고 당국에 고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이상한 잣대로 문제를 이상하게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논평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북한 주민의 인권도 남북대화를 위해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며 “북한 주민의 인권을 도박판의 카드 패로 여긴다면 후일 역사가 엄중히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공세에 열린우리당은 침묵하고 있다. 미 하원이 통과시킨 북한 인권법에 대해 당이 나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닌 데다 인권법을 찬성하면 북한이 반발하고, 반대하면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종석(任鍾晳) 대변인은 “인권법을 저지할 방법도 없고, 문제를 제기해 봐야 별다른 실익도 없이 외교적 분란만 일으킨다”며 “당 차원에서 반대 결의안을 제출키로 한 소장파 의원들과 만나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남북관계발전특위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으나 “소장파와 일단 만나 얘기하자”는 결론만 도출했다. 짐 리치 미 하원 아태소위원장은 이달 초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 방미 때 법 제정 취지를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북한 인권법이 제정되는 과정을 개인적으로 지켜봤는데 인도적인 법안이더라”며 “동의하면 북한을 자극하고, 반대하면 한미동맹에 문제가 생기는데 조용히 지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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