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호사장 “경황없어 피랍시점 번복”

  • 입력 2004년 7월 1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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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1일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쳐 여전히 많은 의혹을 낳고 있다.

특히 김씨의 납치 사실을 한국대사관에 알리지 않은 사실에 대해 김 사장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무장단체와의 직접 협상이 긍정적으로 진행됐고 대사관에 알릴 경우 불이익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해명 자체가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는 김씨 행방을 찾기 위해 회사 직원들과 이라크인 변호사까지 실종 지역인 팔루자에 보내고 경찰서와 병원 영안실까지 뒤졌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정작 이라크에서 가장 큰 정보망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측과 협조관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이 기간 중 4차례나 대사관을 방문할 정도로 대사관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는 또 대사관 방문 목적과 대화 내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대사관 내 가건물을 짓고 대사관이 요청한 담요 문제로 모 서기관과 공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문 목적이 무엇이든 당시 김 사장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을 김씨 실종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라크 교민들 사이에선 이미 6월 초부터 김씨의 피랍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진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질문이 나오자 김 사장은 “이라크에는 교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라크에는 교민이 있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상사원(가나무역 포함) 38명 등 모두 71명의 교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교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소문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이 현지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귀국한 한 교민의 전언이다.

김 사장의 일관된 진술 속에도 의혹은 숨어 있다. ‘납치단체가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최근 터키인 납치 때처럼) 미군 납품 중단 요구도 없었다’ ‘피랍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한국인이 타깃이 아니었다’는 대목은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석연치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납치단체는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으로 상황이 악화됐다고 하는 18, 19일경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한국인’ 김씨를 20일 가까이 억류하고 있었던 셈이다.

납치단체가 김씨 억류 상태의 비디오테이프를 AP 텔레비전 뉴스(APTN)에 보내 억류 사실을 공개하려 한 6월 초 이후에도 납치 사실을 알리지 말 것과 원하는 것도 없다는 신호를 김 사장에게 계속 보냈다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군의 사전 인지설에 대해서도 김 사장이 해명해야 할 부분이 있다. 김씨 피랍이 세상에 알려진 21일 연합뉴스와의 현지 인터뷰에서 “4, 5일전 미군측으로부터 ‘김씨에 대한 소식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실종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 후 뒤늦게 “오히려 내가 물어봤다”는 식으로 번복한 것도 의혹을 더하고 있다.

김 사장은 1일에도 미국 육군 및 공군 복지기관(AAFES) 소속 군무원에게 실종에 대해 (10일경) 문의했을 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군무원은 군인이 아니고 미군과 AAFES는 별개라고 부연 설명하며 적극적으로 미군 인지설을 부정하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와 함께 자신을 포함해 가나무역 바그다드 종사자들 상당수가 국내 특정 교파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에도 구태여 “우리의 활동은 종교단체와 관계가 없다”고 수차례 반복 강조해 발언 배경에 의문을 낳고 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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