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제대로 손 못쓴 정부-깜깜했던 외교부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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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정부, 열린우리당은 23일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관련해 외교통상부에서 합동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회의 참석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변영욱기자
청와대와 정부, 열린우리당은 23일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관련해 외교통상부에서 합동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회의 참석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변영욱기자
▼42시간 석방교섭 아무 성과없어▼

가나무역 김선일씨를 석방시키려던 정부의 노력은 결국 무장단체의 김씨 살해로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납치 소식이 카타르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처음 보고된 21일 오전 4시40분(이하 한국시간)부터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이 김씨 사망 확인을 알려온 22일 밤 11시까지 국민은 42시간20분 동안 가슴을 졸여야 했다.

김씨의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가 담긴 영상물이 21일 오전 5시 알 자지라 방송에 보도되자 정부는 긴급히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듭되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협상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정부는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또 정보력 및 외교력 부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 외교통상부는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외교부는 현지의 이슬람 종교지도자를 ‘중간 창구’로 활용했다. 21일 이후 모두 3차례 접촉해 “무사귀환토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메시지가 김씨를 납치한 무장단체에 전달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정부는 무장단체가 22일 오전 1∼3시경으로 설정한 협상시한을 가슴을 졸이며 넘겼다. 이후 정부 안팎에선 한때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그러나 23일 오전 2시 충격적인 비보가 이라크로부터 날아들었고, 그동안 김씨 석방을 간절히 기도해 온 국민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외교부에선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 김씨 피랍(5월 31일) 이후 김 사장이 6월 1, 7, 10, 16일 모두 네 차례나 바그다드의 한국대사관을 방문했고, 교민 신변안전에 대한 당부를 들었음에도 김씨가 피랍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외교부, 22일 피살시점 이후에도 "희망적" 보고▼

외교통상부가 김선일씨가 이미 살해된 시점인 22일 오후 10시에 ‘상황이 희망적’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가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외교부는 특히 상황오판에 근거한 낙관적 보고를 취재진 1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해 노 대통령에게도 부담을 줬다는 지적이다.

최영진 외교부 차관은 이날 밤 노 대통령에게 “오늘 오후까지는 희망적 정보와 (희망적이지 않은) 다른 정보가 다양했다. 어느 쪽으로 잡아야 할지 생각 중이었다”라고 보고했다. 최 차관은 이어 곧바로 “오후 7시 (협상시한을 연장한다는) 방송보도가 나간 뒤에는 상황이 희망적”이라고 덧붙였다.

최 차관의 섣부른 장밋빛 전망은 통상 주요 현안에 대해 외교부가 신중한 태도를 취해온 것과는 180도 다른 것이어서 그가 무엇을 근거로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오도(誤導)할 수 있는 보고를 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외교부는 평소 브리핑 때 ‘10문2답’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대부분의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을 되풀이해 왔다.

대통령비서실의 고위관계자는 23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외교부의 상황인식에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청와대 분위기를 전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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