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살아있다” 몇시간뒤 “피살” 悲報

  • 입력 2004년 6월 23일 03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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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무역 김선일씨는 결국 ‘한국군 이라크 파병 반대’를 요구한 이라크 과격 무장단체에 의해 아까운 생명을 희생해야 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치던 그의 절규는 정치적 목적을 노린 이라크 무장단체의 무자비함에 묻혀버렸다.

김씨는 그의 무사 석방을 기원한 온 국민의 기도와 정부의 외교노력에도 불구하고 납치 6일 만인 22일 끝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의 피랍사건은 ‘납치(17일)-한국정부의 최종 파병결정(18일)-현지언론 대서특필(19일)-알 자지라의 김씨 살해위협 방송(20일)-정부 협상팀 현지 급파(21일)-파병철회 24시간 시한(22일 새벽) 경과-현지 여론 호전(22일)-협상시한 연장보도(23일)’을 거친 끝에 결국 비극으로 결말이 났다.

김씨 피랍사건은 한국의 추가파병을 저지하려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적대감을 극명히 보여준다.

미군부대에게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제공하는 가나무역 직원 김씨는 파견 근무중이던 팔루자 지역의 리지웨이 미군부대를 떠나 바그다드로 돌아오던 17일 반미 저항세력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항전)’에 납치됐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이 사실을 미군 관계자를 통해 알게 됐지만, 한국 대사관에 통보하지 않고 자체 협상에 나섰다. 가나무역의 이라크인 직원 3명이 무장단체와 6차례 접촉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씨의 납치소식이 공개되지 않은 사이 한국에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이라크 추가파병”을 공식 결정했다. 올 2월 파병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4개월 만이다.

그러나 무장단체는 “한국정부가 파병철회를 거부하면 한국인 인질을 참수한다”는 충격적인 경고가 담긴 테이프를 만들었다. 2분 분량인 이 테이프는 카타르 소재 위성방송사인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20일 밤 11시경(서울시간 21일 오전 5시경) 보도됐다.

테이프 속에서 김씨는 “나는 죽고 싶지 않다(I don't want to die)”를 외치며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무장세력은 이 테이프에서 “(한국 정부는) 오늘 밤 일몰(日沒) 시간 이후 24시간 시간을 주겠다”고 협상시한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는 이 보도를 접한 뒤 발칵 뒤집혔다. 정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요르단으로 긴급 대책반을 급파했다. 또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한국의 파병은 후세인 통치 20년과 전쟁으로 황폐화한 이라크의 재건을 위한 것이지, 침략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2일 이런 분위기가 전달되면서 이라크내 여론이 김씨 석방을 요구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보고가 한국 정부에 접수되기도 했다. 또 아랍에미리트에 소재한 알 아라비야 방송은 이날 오후 7시경(한국시간) “무장세력이 협상시한을 연장하겠다”는 내용을 보도해 분위기는 긍정적인 해결 쪽으로 급선회하는 듯 했다.

또 이라크 무장단체가 자신들이 설정한 철군발표 시한(서울시간 21일 오전 1∼3시)를 넘긴 것도 ‘혹시’하는 기대를 낳기도 했다.

실제로 22일 밤 10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참석한 정부 심야대책회의에서 최영진 외교통상부 차관은 “알 아라비야의 방송 이후 상황이 희망적”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최 차관이 어떤 상황을 근거로 희망적이라고 판단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최 차관의 이런 분석은 “희망적인 정보와 (희망적이지 않은) 다른 정보가 다양하다. 어느 쪽으로 잡아야 할지 생각 중”이라고 밝혔던 것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었다.

이날 상황실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의 갑작스런 방문과 최 차관의 ‘희망적 보고’를 연관지어서, “대통령이 직접 외교부를 찾을 정도로 상황이 호전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분위기가 형성된 지 불과 2시간여만에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김씨의 안전한 귀환을 염원하던 정부와 국민은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23일 오전 2시 긴급 NSC상임위원회를 열어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향후 유사상황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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