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독일의 참회 일본의 침묵

  • 입력 2004년 6월 2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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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6월 3일.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에 반대하는 시위가 절정에 이르자 이날 밤 9시50분 서울시 전역에 8시부터 소급 적용되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그에 따라 육군 4개 사단이 서울에 진주했다. 일체의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고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언론보도는 사전 검열을 받고 야간통금은 밤 9시부터 오전 4시까지로 연장됐다. 그때까지 한일회담 반대시위는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되면서 이날 서울에선 1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경찰저지선을 뚫고 광화문에 진출한 뒤 청와대 외곽의 방위선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계엄군의 진주로 시위가 무력 진압되면서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55일 동안 학생 168명, 민간인 173명, 언론인 7명이 구속된 이른바 ‘6·3사태’의 전말이다. 꼭 40년 전의 일이다.

▼참전국 정상의 노르망디 회동▼

이처럼 많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온갖 무리수를 쓰며 이뤄진 한일 국교정상화가 내년 4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난해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내년을 ‘Korea Japan Festa 2005’로 정하고 상호 이해와 우정을 증진하는 각종 사업을 공동 개최키로 했다. 해마다 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꼬박꼬박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우익진영으로부터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칭찬받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하필이면 작년 6월 6일 현충일을 잡아 일본을 국빈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용기 있는 결단’을 했다고 칭찬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올 6월 6일 유럽에서는 ‘그날’의 60주년을 맞아 미국 프랑스 러시아의 대통령, 영국의 여왕 등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싸운 10여개 연합국 정상들이 바닷가에서 퍼레이드를 벌일 모양이다. ‘그날’이란 대독전(對獨戰)의 승기를 마련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뤄진 1944년 6월 6일을 가리킨다. 올해의 노르망디 정상 퍼레이드에는 처음으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참석한다던가.

한편 독일은 6월 6일보다 2차대전 항복일인 5월 8일을 더욱 부각시켜 기념하고 있다. 특히 1985년, 전후 독일의 지성과 교양과 양심을 대표하는 리하르트 바이츠제커 대통령의 ‘패전 40주년 기념연설’은 각국어로 번역돼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그는 전쟁으로 희생된 독일국민의 고통보다 독일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 폴란드인 등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1945년 5월 8일을 1933년 1월 30일에서 떼어놓고 보지 말라고 타일렀다. 1945년 독일 패전으로 겪은 고통은 1933년 히틀러를 잘못 뽑은 과오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2차대전에서 독일과 동맹했던 일본은 패전 후 오직 1945년 8월 6일만을 기억하는 것 같다. 해마다 히로시마 원폭 돔 앞에서 거행되는 이 행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유일한 희생자이고, 아무 잘못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인류 최초의 원폭 희생자가 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히로시마만 지나치게 클로즈업하다 보니 일본인의 의식에선 진주만(眞珠灣)도, 난징(南京)도 사라지고 급기야 ‘난징은 없다’고 부정되기도 한다. 그 결과 1945년 8월 6일이 진주만을 기습한 1941년 12월 8일과 끊을 수 없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의 일본 젊은이들은 모르기 쉽다.

▼일제 피해국가 8·15 정상회담을▼

바로 그러한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상호 이해 속에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선 과거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미래의 우의에는 올바른 과거의 인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를 위해 나는 금년 6월 6일의 유럽 노르망디처럼 내년 8월 15일엔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 전쟁으로 피해를 본 모든 나라의 정상들이 중국의 난징쯤에서 회동해 아시아에 다시는 어떤 명분의 전쟁도 일어나선 안 된다는 평화의 결의를 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한 평화의 정상회담을 노 대통령이 이번에야말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 발의를 하고 ‘친일청산’에 열을 올리고 있는 특히 여당의 의원들이 열렬히 지원을 해서….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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