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판결 해설 "다수와 소수의 타협의 산물"

  • 입력 2004년 5월 14일 15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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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은 한마디로 '다수와 소수의 타협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수 의견에 따라 '기각'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소수 재판관들이 주장한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과 헌법수호의무 위반 등을 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에게는 '탄핵 기각과 대통령 권한 복귀'라는 실리를, 탄핵소추를 추진한 야당에게는 상당한 명분을 안겨준 절충적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결론은 헌재 재판관들의 구성과 성향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재판관들은 추천기관에 따라 여당과 야당으로 구분되며, 정치적 성향과 이념도 나뉜다. 물론 헌재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규범적 판단'을 했다고 하지만, 그 판단의 밑바탕에는 성향과 이념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평의가 진행되면서 재판관들의 토론은 격렬해졌다. 일부 재판관들은 귀가해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최종 선고를 며칠 앞두고 재판관들은 '전원 합의'를 포기하고 표결에 돌입했고, '기각'이라는 다수의견과 '인용'이라는 소수의견이 갈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각 또는 인용 여부와 함께 논란이 됐던 것이 소수의견의 공표 여부. 다수의 재판관은 법규정 등을 근거로 소수의견 공개에 반대했다. 그러나 기각 의견을 낸 소수의 재판관들은 소수의견 공개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소수의견은 처음에는 9명 가운데 4명으로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다 최종 선고 직전 3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주장의 강도는 훨씬 강해졌다고 한다.

재판부는 결국 절충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 소수의견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 대신 결정문 내용에 그 내용을 대폭 반영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수의견이 가장 뚜렷하게 반영된 부분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여부다. 재판부는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 등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여당 지지발언이 공무원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명백히 밝혔다. 이는 소추위원측의 주장을 상당 부분 인정한 것이다.

그 밖의 쟁점, 즉 대통령 측근 비리와 경제파탄 사유에 대해서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이 같은 결론은 법조계에서 쉽게 예견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헌재의 타협적 결정으로 노 대통령은 '개운치 못한 승리'를, 야당은 '체면만은 유지한 패배'를 기록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진정한 승부는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이번 탄핵사건의 교훈을 앞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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