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亂世의 노래, 治世의 노래

  • 입력 2004년 5월 4일 19시 07분


코멘트
어릴 적 이순신 장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꽉 찼다. 일본에서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도고 헤이하치로까지 그의 이순신 숭배 때문에 ‘우리 편’으로 삼았다. “(세계) 해군사상 군신은 이순신 하나뿐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부사관에 불과하다.” 99년 전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대한해협에 수장시킨 도고의 이순신 예찬에 우리는 영국의 넬슨조차 눈에 차지 않았다.

정작 이 땅에선 종종 충무공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는 20여년간 현충사에 향불이 끊기고 충무공의 위토(位土)가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이에 동아일보가 1931년 거족적인 성금 모금을 주도해 이듬해 현충사가 중건됐다. 당시 동아일보 사설은 ‘민족적 자부심이 마비된 조선의 사회를 자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서러워한다’고 썼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 기념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소설가 송우혜씨의 논문이 다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일부 문학작품의 ‘이순신 죽이기’가 강력한 상업주의 때문이라고 통탄했다. ‘훌륭한 이순신’으로는 더 이상 주목을 끌 수 없으니 ‘사악한 이순신’을 내세워 독자를 모으려 한다는 것이다.

송씨의 지적대로 사실(史實)까지 왜곡하면서 충무공을 상업적으로 깎아내리는 현상이 있다면 큰일이다. 그 상업주의가 모든 것을 뒤집어보고 거슬러 보는 시대 분위기에 영합한 것이라면 더욱 문제다. 뒤틀린 역사의식의 오염이 이순신 죽이기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충무공의 이미지를 차용하려 드는 정치상업주의 또한 마뜩하지 않다. 얼마 전 순천향대의 청소년 상대 여론조사 결과는 그게 얼마나 주제넘은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순신과 같은 위인을 감히 정치인과 비교할 수 없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나온 데 대해 누구도 토를 달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정치권의 ‘이순신 붐’을 국가적 위기상황의 반영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정치인들의 애독서가 된 ‘칼의 노래’는 국난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 붐을 선도한 노무현 대통령은 거기서 무엇을 읽었을까.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는 대목에서 눈을 감았을까 아니면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는 대목에서 몸을 떨었을까.

1주일쯤 지나면 스스로 법적 연금 상태라고 규정한 노 대통령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가 복귀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지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호된 시련을 겪었으니 곡목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와 어디 사람 목청이 그리 쉽게 변하겠느냐는 우려가 엇갈린다.

드골과 링컨에 대한 노 대통령의 최근 언급은 기대를 갖게 하는 쪽. 그는 이단적이고 비타협적이란 평을 듣는 드골의 강한 리더십에 대해서는 “인상적이긴 하나 따라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자신의 저서에서 ‘건전한 상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겸손한 지도자’로 묘사한 링컨에 대해서는 “다시 읽어 봐도 새롭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 주변의 기류가 상서롭지 않다. 강한 대통령이니 친정체제 강화니 하는 것부터 링컨식 문법에 맞지 않는다. 설(說)만 비쳐도 야당이 펄쩍 뛰는 ‘김혁규 총리’ 카드 역시 조짐이 길하지 않다. 대통령의 노래가 국민의 귀에 거슬리지 않으려면 본인의 가창력 못지않게 야당과의 화음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적 조화와 균형을 위해 대통령이 소리를 보다 죽여야 한다. 부조화와 불균형 때문에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이 배를 두드리면서 “대통령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노래할 수 있어야 좋은 사회인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충무공이 목숨을 던져 추구한 것도 그런 사회였을 것이다. 오늘은 어린이날, 정치 얘기는 접고 아이들에게 충무공 얘기를 들려주자.

ccl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