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플루토늄 동결은 즉시논의 가능”

  • 입력 2004년 5월 4일 19시 07분


코멘트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 국제정책센터(CIP) 셀리그 해리슨 아시아담당 소장에게 “테러단체에 핵 물질을 절대 수출하지 않겠다”고 확언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에 대한 평가는 아직은 엇갈리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 채택한 ‘비국가 행위자’에 대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 결의안에 북한이 호응했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미국의 선제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핵무기 개발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해 6자회담의 갈 길은 여전히 먼 셈이다.

▽해리슨 리포트의 주요 내용=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은 “우리가 보유한 핵 물질을 다른 단체에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과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해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보였다.

북한이 유엔 결의안 채택에 맞춰 국제사회의 흐름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고무적인 대목이다. 12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제3차 6자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그룹회의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계관(金桂寬) 외무성 부상은 “플루토늄 개발 동결은 실무그룹회의에서 즉시 논의될 수도 있다”고 말해 기대감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해리슨 소장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대미관계 정상화와 연계해 단계적으로 핵 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핵 물질 수출’과 ‘핵 억지력 개발’을 분리해 테러단체에 대한 WMD 확산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호응하지만 북한의 장래가 걸린 북핵 6자회담에서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김 부상은 해리슨 소장에게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풀고 에너지를 지원하면서 테러국가 지정에서 제외해야 핵개발을 동결한다”고 말해 전제조건을 분명히 달았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해리슨 소장의 평양 방문 일주일 뒤인 지난달 29일 북한을 테러지원국가로 재지정했다.

미 행정부 당국자는 4일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핵개발 포기 의사를 보였다면 고무적인 일이지만 보고서 전체 내용을 살펴보지 않아 단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북한은 ‘혼합경제체제’로 바뀌고 있다=해리슨 소장은 2001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이번 방북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경제’라고 지적했다. 느린 속도지만 성과급제도와 시장경제가 정착되고 있다는 것.

변화를 잘 보여 주는 곳은 지난해 가을 문을 연 평양시내 ‘통일거리 시장’. 22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선 이곳에서는 농산물에서 TV에 이르기까지 상품을 팔기 위한 자본주의적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현재 평양시내 전역에서 통일거리와 같은 시장 20여개가 건설되고 있다.

소규모 창업도 늘고 있고 국영기업의 손실을 메우기 위한 정부 보조금은 끊어졌다. 해리슨 소장은 북한 주재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북한은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기 위해 해외 원조가 필요하다”며 “원조와 투자 유치를 위해서라도 미국과 핵 협상을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셀리그 해리슨…訪北 8차례 한반도 전문가▼

워싱턴포스트 도쿄지국장(1968∼72) 시절부터 남북한 문제를 다뤄온 언론인 출신 한반도 전문가. 72년에 6·25전쟁 이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인터뷰했으며 지금까지 모두 8차례 방북했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미국 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해 워싱턴에서는 ‘친북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