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틀이 바뀐다]달라진 총선현장…후보 혼자 뛴다

  • 입력 2004년 3월 30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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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보름여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선거사무소가 조용하다. 널찍한 사무실엔 서너 명의 직원만이 앉아 있을 뿐이다. 본보와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소장 박찬욱 교수)는 27, 28일 서울시내 여야 후보사무실을 연쇄 방문해 정치제도 개혁에 따른 선거 현장의 변화상을 점검해 보았다.

▽‘한가한 자원봉사자, 미안한 후보자’=서울 성북갑의 열린우리당 유재건(柳在乾) 후보측 한 관계자는 “운동원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후보 혼자 돌아다니고 우리는온라인 선거운동이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원들이 명함을 배포하거나 어깨띠를 하고 ‘△△△후보’를 연호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만큼 후보자가 몸으로 때우는 게 유일한 유권자 접촉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는 엄격해진 개정 선거법 때문이다.

▽경쟁후보가 아니라 선관위와 싸우는 선거=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규제만 조장하는 선거법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민주당 강남갑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박홍석씨는 “상대 당 후보와 싸우기보다는 마치 선거관리위원회와 싸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창의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개발해내면 그때마다 선관위가 각종 법조문을 제시하며 불법임을 통보해 온다는 얘기다.

경기 지역 한 선거구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후보는 “자원봉사해주겠다고 몰려온 사람들은 100여명인데 정작 맡길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그렇다고 비좁은 사무실에 모아놓기도 뭣해 난감하다”고 털어놓았다.

▽지구당 폐지 그 이후=과거엔 동책(협의회장) 통책 반책 등의 공조직을 가동했지만 지구당 폐지로 이제는 조직관리가 쉽지 않다. 서울 양천갑의 한나라당 후보측 관계자는 “과거엔 조직관리비 부담이 컸지만 이젠 순수자원봉사자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돈은 안 들어간다. 그러나 최소한의 조직을 단기간에 꾸려야 하는 정치신인들은 오히려 일정액 이상의 돈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옥외집회 금지의 명암(明暗)=정당연설회 합동연설회 폐지로 막대한 자금 수요가 사라졌다. 그러나 합동연설회 폐지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후보들이 적지 않다. 서울 영등포갑의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측 관계자도 “동원 논란 때문에 합동연설회를 못하게 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합동연설회 부활 필요성을 주장했다. 홍보물만 보면 다 훌륭한 사람인만큼 모든 후보가 한자리에 모여 다면평가를 할 수 있는 합동연설회가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나라당 후보들은 “자유당 때부터 장년과 노년층은 합동연설회와 정당연설회를 듣고 인물을 평가하는 데 익숙해 있다. 연설회 폐지로 온라인과 휴대전화 사용에 익숙한 세대를 지지층으로 갖고 있는 열린우리당만 유리해진 측면이 있다”고 불평했다.

▽방송토론 기대와 실망=일부 후보들은 한때 지역 케이블 방송 주최 초청토론회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특히 탄핵 정국 이후 후보자간 인물 정책 대결이 실종되고 특정 현안에 대한 찬반식 국민투표 식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방송토론은 ‘인물’이 부각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토론의 비중 강화는 금권에 의한 동원선거에서 미디어 선거로의 이행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후보들은 지역방송의 제한된 시청자층을 확인하고 꽤나 실망하는 눈치다.

또 지역방송 토론이 주로 지역적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후보들이 적지 않다. 전국적 지명도가 높고 국가적 이슈를 주도해 온 의원들일수록 자신의 비교우위를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지역공약에 맴도는 지역방송 토론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표집필=안병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박성원기자>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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