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래/대통령이 해서는 안될 일

  • 입력 2004년 1월 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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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금년 최대 정치적 목표는 열린우리당이 4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 국회가 정부의 국정수행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적 여당이라고 하는 열린우리당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각 언론이 연초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의 이런 바람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총선개입 바람직하지 않아 ▼

노 대통령은 민주당 분당 이후 무당적(無黨籍) 대통령이기는 하나 열린우리당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이미 수차례에 걸쳐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분당해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할 즈음 열린우리당을 개혁정당이라고 치켜세웠는가 하면, 지난해 말에는 이번 총선에 출마가 예상되는 청와대 출신 비서관들과의 모임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이 선거에 관여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대통령에게 ‘공명선거 협조요청’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선관위의 협조 요청과 관련해 공명선거 의지를 표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선관위측에 ‘대통령으로서 도대체 뭘 하면 되고 뭘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라고 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대통령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시비를 거는 야당과 일부 언론’이 오죽 못마땅했으면 법률가 출신인 대통령이 오히려 선관위에 물어보겠다고 했을까 이해도 가지만 공명선거를 관리할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현행 선거법 제60조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을 제외한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선거법 정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공무원의 선거 중립이 점차 정착돼가는 과정에서 행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과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제대로 담보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대통령도 정치인으로서 선거에 대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수는 있다. 더구나 지난 1년 간 야당이 절대 과반수를 차지한 국회로부터 지원을 못 받은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자신과 정치적 이상을 같이 하는 정당이 승리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직도 공무원의 선진적 정치의식이 미흡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적극적인 총선 개입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를 미국과 같이 정당정치가 제도화되고 공무원의 선거 중립이 확립된 정치 체제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4월 총선이 대통령의 신년사 언급에서와 같이 공정하고 엄격한 선거관리 하에 실시되려면 우선 대통령의 공명선거 의지가 유권자들에게 확실하게 인식돼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공명선거를 훼손할 수 있는 정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잘못하면 겨우 정착 초기 단계에 있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무원의 선거 개입으로 인한 불법선거를 막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른 지난 선거사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거史 교훈 잊지 말아야 ▼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지원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입당하는 것이 좋다. 초당적 입장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무당적을 내세운 상황에서 특정 정당 지지를 계속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 많은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마음이 이미 열린우리당에 가 있으며, 다만 재신임 문제와 결부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입당하려는 선거전략도 이미 간파하고 있다. 총선을 겨냥한 대통령의 선거 전략과 정치에 대해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새삼 주목된다.

김영래 아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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