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정책조율 시스템 문제없나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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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내년 7월부터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기로 했다. 인상에 따른 돈의 사용 방안도 다른 부처와 합의했다.”(보건복지부)

“아니다. 담뱃값을 올린다는 원칙에만 합의했을 뿐 인상 폭과 시기 등 세부방안은 추가로 논의해야 한다.”(재정경제부)

담뱃값 인상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책조율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처 이기주의 때문인지 국민은 헷갈린다.

정부는 19일 고건(高建) 국무총리 주재로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담뱃값 인상 문제도 다뤘다.

회의가 끝난 뒤 복지부 문경태 기획관리실장은 “담뱃값을 500원 올리기로 최종 결정했고 담뱃값 인상으로 생기는 돈의 사용처 등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가 알려지자 총리실과 재경부는 펄쩍 뛰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합의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언제, 얼마나 올릴 것인지 등에 대해 더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리실 관계자도 “(총리가) 담뱃값 인상액과 활용방법에 대해 복지부 재경부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가 더 논의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복지부 재경부 총리실의 입장은 이틀이 지난 21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파열음이 터져 나오자 정부과천청사 주변에선 “정책을 발표하려면 국민이 아니라 다른 부처의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같은 회의에 참석하고도 부처간에 이처럼 다른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어느 부처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추후 밝혀지겠지만 복지부가 회의 결과를 다른 부처와 상의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전과(戰果)인 양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분명 경솔한 일이다. 혹시 아직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도 않은 것을 담뱃값 500원 인상과 인상분의 사용 용도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서둘러 발표한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재경부 등 다른 부처들이 복지부와 합의했으면서도 이것저것 살필 것이 많아 일단 복지부의 발표를 부인한 것이라면 그것 또한 온당치 않은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각 부처의 시각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정책이 결정되기까지는 토론이 필요하고 부처간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이를 조율하는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는 것은 정부 운영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정부의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김동원 사회2부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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