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기소설 '황진이' 국내 출판 추진…이르면 내년 상반기

  • 입력 2003년 11월 5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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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예술가 차형삼이 그린 소설 삽화. 기생이 되겠다는 황진이가 놈이에게 귀밑머리를 풀어달라고 하는 장면.
북한 인민예술가 차형삼이 그린 소설 삽화. 기생이 되겠다는 황진이가 놈이에게 귀밑머리를 풀어달라고 하는 장면.
북한 인기 소설 ‘황진이’의 국내 출판이 추진되고 있다.

‘황진이’는 북한의 소설가 홍석중(62)이 지난해 말 북한 ‘문학예술출판사’에서 펴낸 장편 역사소설이다. 그는 ‘임꺽정’의 작가인 벽초 홍명희(1888∼1968)의 손자. 9월 열린 중국 베이징도서전에서 이 소설을 접한 몇몇 국내 출판사 대표들이 현재 북한측과 저작권 교섭을 진행 중이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출판사 대표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출간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평양을 방문했던 북한문학 전문연구가 김재용 원광대 교수(국문학)는 “그곳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낮에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황진이’는 그들에게서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책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소설 ‘황진이’는 당 정책의 해설쯤으로 치부되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김 교수는 “‘황진이’는 사상적 측면보다는 성애(性愛)와 같은 인간 내면의 문제를 파고드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김 교수는 각각 기업소와 대학사회를 배경으로 북한 사회 내부의 문제를 들여다본 김문창의 ‘열망’(1999), 강선규의 ‘교정의 륜리’(2000)와 같은 맥락에서 ‘황진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설은 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화적(火賊) ‘놈이’와 황진이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뼈대로 양반 사대부의 허위의식을 꼬집은 여러 에피소드들이 살을 이루고 있다.

황진이 집안의 종이었던 놈이는 아씨인 황진이를 사랑한 나머지 양반과 여종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황진이의 출생비밀을 예비신랑측에 폭로해 파혼에 이르게 한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황진이는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몸을 놈이에게 주고 기생이 된다. 황진이는 효수(梟首)에 처해지게 된 놈이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애쓰는 과정에서 평생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지만 결국 놈이는 처형당하고 황진이는 조선 각처를 떠돌다 생을 마친다.

작가는 1941년 태어나 어린시절을 서울에서 보냈으며 1948년 남북협상에 참가한 할아버지 홍명희를 따라 일가가 월북했다. 작가의 경험을 반영하듯 ‘황진이’에는 남한과 북한의 어휘가 함께 등장한다. ‘장맞이’ ‘깨끔내기’ 등 북한 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서울식 어휘와 ‘집난이’(출가한 여자) ‘난바다’(먼 바다) 등 평양 및 서북지역 어휘가 공존하고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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