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우선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이라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됨에 따라 국내의 파병반대 여론을 잠재울 명분을 확보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노 대통령 지지층에선 파병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유엔의 깃발 아래 파병을 하는 것인 만큼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파병이 한미동맹관계를 유지하고,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도 직결된 사안인 만큼 더 이상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는 파병결정의 타이밍을 놓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자신의 재신임 문제로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과감히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면의 반전을 꾀했을 수도 있다. 파병이 현실화되면 재신임 문제는 그 뒷전으로 밀려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보수층을 중심으로 노 대통령의 파병결정을 옹호하며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움직임이 일 것이라는 것도 계산에 넣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노 대통령의 지지층에선 재신임 문제로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라크 파병문제로 다시 노 대통령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이 경우 노 대통령은 경우에 따라선 지지층과 비판층의 지지를 모두 확보할 공산도 없지 않다.
물론 청와대 내에서는 유인태 (柳寅泰)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 정무라인을 중심으로 이라크 파병이 내년 총선에서 노 대통령 지지층을 자극,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16일 일시 귀국한 한승주(韓昇洲) 주미 한국 대사로부터 이라크 파병 결정 지연에 따른 워싱턴의 ‘냉기류’를 전해들은 것도 파병을 조기 결정하는 쪽으로 급선회한 배경이 됐을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라크 파병으로 새로운 경제적 이득을 얻겠다는 것보다는 만약 파병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잃게 될 유무형의 불이익이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미국 신용평가회사들이 국가등급을 낮출 경우 경제적 불이익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결정을 내림으로써 미국에 상당히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파병의 발표 시기는 당초 20일 APEC회의에서 부시 미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한 이후에 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럴 경우 “미국의 압력을 받아 마지못해 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어 독자적인 결정을 강조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평가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