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국민투표'논란]정치권 利害로 흐지부지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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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유보 전철을 밟나.’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제안한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사실상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국민투표 자체가 정쟁구도에 뒤엉켜 유야무야될 공산이 커졌다.

이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87년 대선 때 부동층 흡수 전략의 일환으로 집권 후 1년 안에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가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소산으로 결국 이를 전면 유보한 전례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짙어지고 있다.

89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중간평가 공약을 내걸었으나, 소속 민정당이 88년 총선에서 패배함으로써 극심한 여소야대 상황 속에 중간평가 공약 이행여부를 놓고 혼선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1야당이었던 평민당 김대중(金大中) 총재는 고심 끝에 중간평가에 부정적인 입장을 정리했다. ‘중간평가는 위헌이기 때문에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 중간평가를 할 경우 국론이 분열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승산이 불확실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특히 당시 DJ의 중간평가 유보결정은 건국대 사태,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 등으로 조성된 공안정국을 탈피하려는 의도도 크게 작용했다.

통일민주당의 김영삼(金泳三) 총재는 중간평가를 하자는 쪽이었으나 정치권은 수차례의 절충 끝에 합의를 도출했고 결국 노태우 대통령은 89년 3월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중간평가 전면 유보를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도 89년 당시와 구체적 상황과 여건은 다소 다르지만, 같은 결말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연내 국민투표를 주장했던 한나라당이 ‘선(先) 측근비리 진상규명’을 앞세워 국민투표 실시시기를 사실상 무기연기시킨 데다 민주당의 경우는 89년의 전례를 내세워 ‘정치권의 합의’로 노 대통령이 제안한 국민투표를 철회하자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박상천(朴相千) 대표가 4당 대표와 원내총무가 참여하는 8자 회담 개최를 추진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여기에다 청와대측도 ‘정치적 합의’ 없이는 국민투표를 밀어붙이기 어려워 이해 당사자 가운데 누구도 국민투표를 앞세워 강공드라이브를 펼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 때문에 결국 국민투표는 특단의 상황반전의 계기가 없는 한 총선까지 떼밀려가 ‘재신임여부’가 총선최대의 이슈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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