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송두율씨를 위한 '지나친 변명'

  • 입력 2003년 10월 7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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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학자들로 구성된 ‘송두율(宋斗律) 교수 사건 교수·학술단체 비상대책위원회’는 7일 송씨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해석의 관건은 사법적 판단의 논리와 양심의 논리 사이의 충돌”이라고 정리했다.

성명서에는 이런 말도 담겨 있었다. ‘법률의 논리는 경계선 바깥에 찍힌 발자국의 수만 셀 뿐, 그러한 발자국을 남기게 된 전체 발걸음의 행로는 잘 헤아리지 못하며 더욱이 그러한 발걸음을 인도한 개인 내면의 논리와 고뇌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사법적 논리’는 무엇이고, ‘양심의 논리’는 무엇인가.” 기자가 질문하자 답변이 이어졌다.

“송 교수의 노동당 입당은 당시 남한이 유신체제의 억압적 상황이었다는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남한이나 북한에 대한) 치우침조차도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 왔다.”(신정완·辛貞玩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외국에서 사는 철학자에게는 실정법을 넘어설 수밖에 없는 양심의 소리가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송영배·宋榮培 서울대 철학과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사법적 논리와 양심의 논리의 충돌에 대해 제시한 해결책은 의외였다. 국가보안법이란 실정법의 논리에 전적으로 의존해 송씨 사건을 다루는 것에 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상대책위원회가 내놓은 ‘송 교수를 위한 변명’은 지나쳤다는 느낌이다. 학문적 업적이 출중한 지성인에게는 법을 예외적으로 적용하자는 주장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다. ‘의도가 선하니까’ ‘악법은 무시해도 되니까’라는 일부 진보적 학자들의 법의식을 표현한 것이라면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송씨 사건을 거론하며 ‘양심의 논리’ ‘내면적 고뇌’란 표현을 쓴 것도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듣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여러 차례 말을 바꾸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외면한 채 북한 정부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송씨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비양심적 지식인’일 뿐이다.

지난해 강원 홍천군의 어느 할머니는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남편의 잘못으로 일어난 산불의 피해 변상금 123만157원을 22년간에 걸쳐 모두 갚아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날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양심의 논리와 사법적 논리는 다르다’ ‘시절이 수상했다’는 등 알쏭달쏭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문득 묵묵히 법을 지키느라 고생한 이 할머니가 떠올랐다.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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