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얼굴의 宋’ 저서따로 행동따로

  • 입력 2003년 10월 2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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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씨는 지난해 출간한 책 ‘경계인의 사색’(한겨레신문사 간) 277쪽에서 ‘송두율을 김철수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란 2001년 9월 서울지법 재판부의 판결을 언급하며 이를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했다.

“유대인 프랑스군 장교 드레퓌스는 1894년 독일군의 첩자라는 혐의로 체포돼 1896년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근거 없는 판결에 저항해 에밀 졸라 등 저명한 문인과 지식인들이 ‘나는 고발한다’란 문장으로 시작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투쟁은 기본적으로 가톨릭 보수주의자들과 유대인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이념적 싸움이었다.”

송씨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 의해 자신이 북한 공작원으로 ‘부당하게’ 지목된 점 △이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언론간 갈등이 심화된 점 △일부 진보 지식인들이 연대 서명을 하며 그러한 주장의 부당성을 제기한 점 등이 드레퓌스 사건과 닮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가톨릭신자로 기득권층에 속하면서도 용감하게 드레퓌스 편에 섰던 ‘피캬르’라는 인물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에 드레퓌스는 많아도 피캬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준법서약서에 서명한 송씨는 2000년 8월 출간한 책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한겨레신문사 간) 266쪽에서 “왜 내가 종이쪽지에 불과할 수도 있는 준법서약서에 서명하지 않는가”라고 자문한 뒤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상을 준법서약서라는 과거의 틀에 가두어두고 민족의 화합이나 통일의 새 시대를 절대로 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록 요식행위라고 할지라도 나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수십년 동안 양심을 지켜온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의 인간 승리의 기록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이 나로 하여금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게 만든다.”

결국 송씨는 “나는 김철수”라고 시인하며 서약서를 쓰고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향해 던졌던 그의 비판적 성찰이 그대로 부메랑이 돼 자신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송씨의 귀국을 위해 ‘시시포스처럼 무거운 바위를 계속 굴려 올려온’ 진보계 인사들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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