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세계/北외교 정말 강한가]‘베일 속 전략’이 원인

  • 입력 2003년 9월 25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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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외교’로 대표되는 북한 외교의 실체는 무엇일까.

비록 소수지만 국내 일각에선 “초강대국 미국에 대해 제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국가가 북한이다”며 북한의 외교력을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북한 및 외교전문가들은 ‘전투에선 이기지만 전쟁에선 진다’는 것을 북한 외교의 본질로 파악하고 있다.

▽경직성·모호성의 역설=북한 외교관의 특징은 협상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협상 테이블에선 절대 양보하는 일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4일 전직 통일부 장관은 “합리적인 설명을 곁들이더라도 ‘평양에서 지시가 없었다’며 버틸 경우엔 암담한 심정이었다”며 과거 협상 경험을 회고했다. 연세대 문정인(文正仁) 교수는 “북한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경직성을 협상의 바게닝 칩(bargaining chip)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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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정보를 철저하게 감춘다는 점도 북한의 외교력을 ‘과대평가’하는 요인이다. 한국 미국의 협상전략은 언론 보도, 국회 청문회, 여론 수렴 과정을 통해 대부분 공개되는 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논리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A씨는 전화통화에서 “북한 외교부 안에선 서방 대표단의 전략을 손바닥 보듯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이 장수(長壽)하는 것도 한국과는 차이점. 94년 1차 북한핵 위기 때 미국과의 협상에 나섰던 강석주는 현재도 외교부 제1부상(副相)으로 외교사령탑을 맡고 있으며 백남순 외무상, 김계관 제1부상 등 낯익은 얼굴이 아직도 건재하다. 문 교수는 “한국 미국의 협상파트너가 1, 2년마다 바뀌는 동안 북한 대표는 과거 상황까지 꿰뚫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직성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미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아인혼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23일 국제전화 통화에서 “북측 외교관이 상부의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자국에 이득이 되는) 기회가 찾아와도 이를 포착하거나 이용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무오류?=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지적을 북측 외교관이 묵과하지 않는 장면도 외교현장에서 쉽게 목격된다. 이는 주체사상의 기본 전제인 수령(지도자)은 틀리지 않는다는 수령의 무오류성과 무관하지 않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직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북-미 미사일회담에 참석했던 한 미국 인사의 증언.

“김정일-올브라이트 회담에서 의견을 나눈 미사일 수출금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국측이 ‘김 위원장의 말에 다소 애매한 대목이 있다’고 말하자 북측 인사가 내게 다가와 ‘위원장의 말이 애매하다는 것은 북한을 모독한 것이다’며 펄쩍 뛰었다.”

이런 상황은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99년 4자회담 당시 북한은 중국이 한국에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한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 했고 이런 심기가 회담장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4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만찬을 주최하는데 중국이 주최자인 날에 북측은 고의적으로 회담시간을 2시간이나 연장해 달라고 요청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 B씨)

▽북한 외교의 한계=외교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해 일본 여론을 악화시킨 것을 대표적인 외교적 실수로 꼽는다. 중앙대 제성호(諸成鎬) 교수는 “최고지도자가 국가기관의 납치행위를 시인한 것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북-일 관계에서 북한은 일방적 피해자에서, 맞고소의 한 당사자로 전락했고 북한이 받아낼 배상금도 수십억달러 줄어들 가능성이 생겼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 외교의 한계는 북한이 서방세계의 외교원칙에 무지한 탓이라는 것이 일반적 풀이다. 외교내용이 언론에 공개되고 여론의 피드백을 받아 새 정책이 만들어지는 서방외교를 북한이 무시했다는 것이다. 비밀외교가 관행이던 중국 및 구 소련과의 외교에서 ‘외교적 실수’를 취소할 수 있던 경험에 의존한 측면이 강하다.

▽외교부와 군부=북한 외교의 중심은 외교부. 구조상으론 정무원 내각에 포함되지만 김 위원장에게 중요 사안을 직보하는 별도 조직으로 간주된다. 김 위원장도 80년대 말 “외교부는 나의 외교부”라는 말로 외교부의 독자적 위상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앞세우는 선군(先軍)정치, 즉 군이 다른 정치 사회영역보다 우월하다는 체제는 외교부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워싱턴 포스트 외교대기자 출신인 돈 오버도퍼는 “북한 방문 때 군 고위인사들이 외교관들을 ‘넥타이들’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하하는 말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통일연구원 정영태(鄭永泰) 선임연구위원은 “보수적인 군이 대외정책에서 외교부를 압도하고 있지만 반대로 외교관들이 ‘군부의 반대 때문에 이런 내용은 합의해도 소용이 없다’며 협상에 활용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내가 경험한 북한 외교관▼

민병석
전 체코대사
폐쇄사회인 북한에서도 대외접촉 경험이 있는 외교관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북한 외교관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처지, 경제적 낙후(특히 한국과 비교해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등 최고지도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에 현실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북한이라는 특수한 정치상황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북한 외교관은 공식 회합에서의 태도와 단 둘이 만났을 때의 태도가 크게 달랐다. 이는 지위 고하와 관계없다. 그들은 공식 석상에선 철저한 주체사상의 신봉자였다. 또 ‘지상낙원’인 북한에 대한 예찬, ‘강성대국’ 달성을 위한 멸사봉공의 자세,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여과 없이 표시했다.

그러나 사적인 자리에선 ‘최고지도자’의 오류 가능성, ‘다락 밭’ 농사의 재앙, 북한 경제의 파탄, 북한 군부의 완고성에 대한 원망 등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한국 사회의 비약적 발전상도 인정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접근하면 이 같은 태도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북한 외교관들은 공식적인 약속을 할 때도 항상 전제조건을 붙였다. 북한체제로 보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번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준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공적약속이라도 신뢰감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선득후공(先得後供)’의 전략도 특징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항상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사안에 관해 먼저 토의하자고 주장했다. 또 토의를 시작하더라도 아주 막연하고 추상적인 결론으로 귀결시키려는 태도를 나타냈다. 그래서 북한과의 합의는 주로 ‘주는 회담’이 되지 ‘받는 회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북한은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고 있다. 과거 방식으론 결코 북한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한 북한 외교관이 내게 한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민 선생, 통일이 되면 우리 식구들을 살려 주셔야 합니다. 약속해 주세요.”

민병석(閔炳錫) 전 체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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