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조성하의 북한답사기]<하>백두산과 개마고원

  • 입력 2003년 9월 17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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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9월 하순에 찾은 해발 2200m의 백두산 천지. 천지는 9월이면 겨울에 접어들어 눈이 쌓인다. 고무보트는 천지의 산천어 연구용. 조성하기자
지난 2000년 9월 하순에 찾은 해발 2200m의 백두산 천지. 천지는 9월이면 겨울에 접어들어 눈이 쌓인다. 고무보트는 천지의 산천어 연구용. 조성하기자
《‘조선은 명승의 나라, 평양은 조선의 심장. 백두산은 혁명의 성산,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 묘향산은 천하제일 명승, 개성은 고려의 수도.’ 북한의 ‘조선국제여행사’에서 펴낸 ‘조선 관광 문답’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이다. 북에서 ‘혁명의 성산’이라 불리는 백두산과 그 주변의 개마고원(북한 명칭은 백두고원)을 찾아 떠났다.》

오후 3시 53분. 승객 110명을 태운 북한 고려항공의 러시아산 투폴레프 기종 여객기가 ‘평양항공역’(순안 비행장)의 계류장을 떠나 천천히 활주로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백두산 천지 아래 첫 동네인 양강도 삼지연군으로 가는 고려항공의 JS 5277편 특별기다. 항로상 거리는 500km, 소요 시간은 이륙 후 50분.

백두고원의 삼지연 비행장에 착륙했다. 등반용 시계의 고도계는 ‘1500m’(정확한 수치는 아님)를 가리켰다. 태백산 정상(1547m) 높이. 말로만 듣던 ‘백두고원’을 실감케 했다.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연결

이튿날 새벽.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로 향했다. 삼지연군에서 46km 거리. 해발 1950m의 트리 라인(Tree Line·수목 생장 한계선)을 지나자 용암대지의 민둥산 등성이 펼쳐졌다. 예서 천지까지는 14km. 백두다리(해발 2120m)로 소백수를 건너자 가파른 산길이 이어졌다. 경비 초소를 지나 ‘삼지연 42km 백두 밀영 38km’라고 쓰인 이정표를 지나 비포장도로로 들어서니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천지가 지척이다.

주차장에는 ‘지상궤도식 삭도’(89년 준공한 지상케이블카) ‘백두역’이 있다. 천지의 향도봉(해발 2712m)까지 운행된다. 천지 13연봉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는 향도봉. 군인 복장의 여성 안내원 5명이 반갑게 맞았다. 발아래 놓인 천지. 거대한 칼데라의 호안은 하얀 눈으로 듬성듬성 덮였다. 천지에는 9월에도 눈이 1m씩 내렸다.

천지 바깥을 보자. ‘천리수해(千里樹海)’의 나무바다가 하늘과 맞닿는 곳까지 펼쳐졌다. 그 대지의 끝, 지평선에서 밝은 빛줄기가 터져 나왔다. 해돋이다. 여명이 사라지고 백두고원의 웅자가 드러났다. 천지 연봉도 하나 둘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었다. 청아한 호수 물 빛깔도 드러났다.

천지 수면의 높이는 해발 2199.6m. 향도봉에서 곤돌라(길이 1200m)를 타고 천지로 내려갔다. 중국 쪽에서 바라만 보았던 천지. 두 손에 담아 들이켰다.

평균고도가 해발 1400m인 북한 양강도 대홍단군의 백두고원에서 바라다 본 백두산. 9월하순인데도 하얀 눈을 이고 있다.

5일간의 백두산 여행은 주로 일제가 1930년대에 국경 수비를 위해 건설한 갑무 경비 도로(갑산∼무산)를 따라 펼쳐진 백두고원에서 이뤄졌다. 그 백두고원을 여행하는 4일간 기자는 설렘을 가눌 수 없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천리수해의 나무바다를 가르는 갑무 경비 도로를 지나면서 북미 대륙의 로키산맥, 북유럽 핀란드의 광활한 침엽수림대를 여행할 때 가졌던 부러움을 떨쳐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마고원 '나무의 바다' 1000里

평균 높이 1400m의 고지인 백두고원. 그 위를 뒤덮고 있는 원시림으로 이뤄진 천리수해란 버스가 두 시간을 달려도 높이 30m급의 잎갈 나무(낙엽송)가 빽빽이 들어선 숲을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숲의 바다다. 10분 만에 길가 숲에서 빵버섯을 한 광주리나 따고 10월 중순에도 하룻 밤 사이에 눈이 2.5m나 쌓이며 5월 중순까지 눈이 쌓인다는 삼지연 백두고원의 대자연. 말 사슴이 숲 속을 누비고 호랑이가 아직도 있을 거라고 모두가 믿는 곳 거대한 백두산. 그 아래에 펼쳐진 백두고원의 이 황홀한 대자연은 누구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양강도 삼지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반도의 허다한 폭포 가운데 이보다 특이한 것이 또 있을까. 현무암 바위 구멍에서 솟은 물로 이뤄진 이명수폭포는 이명수가 흐르는 삼지연군 4km 물가에 무려 44개나 있다. ‘중심 폭포’ 위 정자는 이명수 정각. 조성하기자

‘조선 혁명의 성산.’ 북한에서 백두산은 이렇게 불린다. ‘혁명’이란 김일성 주석의 항일 무장 투쟁. 천지 연봉인 향도봉의 호수 바깥쪽에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향도봉 친필비’에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라는 초대형 글씨(총길이 216m)가 모자이크로 쓰여 있다.

북한에서는 백두산을 소개할 때 자연이나 산세보다는 ‘혁명 사적지’에 비중을 둔다. 혁명 사적지란 항일 유격 활동 당시 사용했던 밀영(密營·비밀 기지)과 전승지(보천보 전투), 김 국방위원장의 생가 등등. 백두산이 북에서 ‘대 노천(露天)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혁명의 성산’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이미지와 김 주석의 ‘혁명 사적지’를 결부시킨 것으로 우리가 전혀 몰랐던 백두산의 또 다른 모습. 북측은 79년 5월 ‘삼지연 대 기념비’를 비롯해 김 주석의 항일 무장 투쟁 유적인 ‘혁명 사적’을 복원, 보천보 전투와 무산 전투의 항일 유격대 행군 노정을 따르는 ‘혁명 사적’ 답사 루트를 개발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답사대’에 참가, 며칠간 혹은 수십일씩 걸어서 백두산 주변의 혁명 사적을 돌아보는 답사 활동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

그 ‘혁명 사적’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삼지연 대 기념비’(양강도 삼지연군에서 2km)와 ‘백두 밀영’(이상 삼지연군), 보천보(양강도 보천보군) 및 무산지구 전투 승리 기념탑(대홍단군).

분출된 용암이 개천을 막는 바람에 형성된 삼지연(三池淵)은 이름 그대로 세 개의 연못. 모두 7개의 연못이 있지만 항상 물이 고이는 것은 세 개뿐이다. 분출시 쌓인 하얀 부석과 8개월간의 긴 겨울로 사철 흰 모자를 쓴 모습을 한 백두산은 이 연못을 배경으로 봐야 제격이다. 그러나 지금은 연못 앞에 초대형의 김 주석 동상(탑신 포함 높이 19.5m)과 봉화 탑(높이 50m)이 있는 3만평 규모의 삼지연 대 기념비가 들어서 연못을 배경으로 한 백두산 감상은 좀 어렵다.

보천보(800m·이하 괄호 안 수치는 해발고도)는 북한이 김 주석의 대표적인 항일 무장투쟁 활동으로 홍보하는 ‘우편소 습격 사건’(1937년 6월 5일)의 발생지. 이 사건은 한 달 후(6월 5일)에 발행된 동아일보 호외로 세상에 알려졌다. 보천보를 들렀다가 점심식사를 한 곳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곤장덕’(1005m)이라는 언덕. 이곳은 조선 숙종 때 중국 관리가 국경을 확정짓기 위해 답사차 들렀던 곳으로 여기 서니 저 멀리 언덕 아래 흐르는 압록강과 그 뒤 중국 땅으로 연결되어 치솟은 백두산 정상이 보였다.

백두산 관광길에 유일하게 ‘혁명’과 관련되지 않은 자연 풍광은 ‘이명수 폭포’(삼지연군에서 12km)다. 이명수(鯉明水)는 백두산 아래의 소백산에서 발원한 물줄기. 삼지연군을 경유해 남행하다가 압록강에 유입된다. ‘샘물 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폭포는 서편 물가 벼랑의 바위(현무암) 구멍에서 물이 솟구쳐 줄줄 흘러내리는 형국. 이명수 마을을 중심으로 4km 강변에 이런 스타일의 크고 작은 폭포가 무려 44개가 발달했다고 했다. 그 가운데 이명수역에서 800m 거리에 있는 폭포 위에 정자각(이명수 정각)을 설치한 중심 폭포를 찾아보았다. 높이 30m, 너비 32.4m의 벼랑에서는 쉼 없이 물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한겨울에는 폭포수의 물방울이 얼어붙으며 피어난 서리꽃으로 폭포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장관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북측은 폭포의 수온은 연중 변함없이 섭씨 5도로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 양강도·삼지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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