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비자금 종착역 수사는 불가능”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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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에게서 현대비자금을 전달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검찰이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현대비자금 수사가 난기류를 만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검찰은 권 전 고문을 긴급 체포하기 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현대비자금을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혀 권 전 고문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검찰은 13일 권 전 고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비자금을 나눠가진 정치인들에 대한 권 전 고문의 진술이 없어 현대비자금 사용처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대비자금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 고위 관계자는 “권 전 고문이 나눠준 돈 자체는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3년)가 지나 수사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처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뇌물 사건의 경우 돈이 전달된 경위만 밝혀내면 사실상 수사가 끝났다고 봐야 하며 사용처 규명은 수사의 실익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권 전 고문이 현대에서 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사실만 밝혀내고, 200억원이 누구를 거쳐 어디에 사용됐는지를 규명하는 수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의 이 같은 기류변화를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검찰이 정치적 비중이 큰 정치인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000년 총선 때 원도 한도 없이 돈을 써봤다’는 취지로 했던 발언이 정치 쟁점화되고 있는 점도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총선자금 수사에 부담을 느끼게 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와는 달리 이르면 다음주 현대에서 직접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이 추가로 소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음 단계 수사를 위한 ‘숨고르기’ 차원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검찰이 1999년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인 이른바 ‘세풍(稅風)’ 수사 당시에는 1000만원 단위까지 사용처를 확인했기 때문에 이 같은 방침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법조계 일각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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